
시편 23편 1절 John의 강해 - 나의 목자 여호와
제목: 나의 목자 여호와
구절: 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서론: 삶의 길목마다 우리는 두려움과 부족함 앞에 멈추곤 합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목동에서 왕이 되기까지 그는 광야를 헤매고 목숨의 위협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경험 너머에서 이 한 절을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짧은 한 구절에 우리 신앙의 전부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여호와 - 나의 목자이신 언약의 하나님
강해: 히브리어 원문 시편 23편 1절은 יְהוָה רֹעִי(야훼 로이)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는 히브리어 יְהוָה(야훼)로 하나님의 고유하신 언약의 이름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계시하신 이름입니다. 단순히 신(神)을 가리키는 일반명사 אֱלֹהִים(엘로힘)과는 달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역사 안에서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인격적 하나님만의 이름입니다. 다윗이 "여호와"를 목자로 고백할 때, 그것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살아 있는 선언이었습니다.
해설: 이사야 40장 11절은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목자의 언어로 생생하게 그려 냅니다. 에스겔 34장 11절에서도 여호와께서는 직접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라고 선포하십니다. 잃어버린 양을 포기하지 않고 직접 찾아 나서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시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언약을 완성하셨습니다. 성경 전체가 여호와를 목자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적용: 지금 이 자리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막연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언약을 완성하신 인격적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그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심을 가슴 깊이 고백하십시오.
2. 나의 목자 - 인격적 관계의 선언
강해: 히브리어 רֹעִי(로이)는 "목자"를 뜻하는 רֹעֶה(로에)에 1인칭 단수 소유 접미사 "י(-이)"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BDB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 히브리어 사전에 따르면, 어근 רָעָה(라아)는 "먹이다, 풀밭으로 인도하다, 친히 돌보다"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단지 여호와가 '목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목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작은 소유격 접미사 하나가 교리와 체험, 지식과 살아 있는 신앙을 구분합니다. 목자가 누군지 아는 것과 그분이 바로 "나의" 목자임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위에서 이 고백을 드렸습니다.
해설: 요한복음 10장 11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10장 14절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라고 하십니다. 구약에서 "나의 목자"로 고백된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에서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됩니다. "나의 목자"라는 고백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 즉 서로 알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화: 존 웨슬리는 평생 설교와 저술로 막대한 수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검소하게 살며 거의 전부를 가난한 이웃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남긴 재산은 허름한 외투 몇 벌과 주머니 속 동전이 전부였다고 전해집니다. 웨슬리는 이렇게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재물을 쌓기 위해 살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신학 교과서의 개념이 아니라 실제 삶의 모든 순간을 인도하시는 살아 계신 "나의 목자"였습니다. 그 신뢰가 그를 18세기 영국의 가장 위대한 부흥의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적용: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으로 먼저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개인적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기도 가운데 "주님, 당신이 나의 목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성도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목자는 한 마리의 양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3.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완전한 공급의 확신
강해: 히브리어 לֹא אֶחְסָר(로 에흐사르)에서 אֶחְסָר(에흐사르)는 히브리어 동사 חָסֵר(하사르)의 미완료 1인칭 단수 형태입니다. BDB 사전에 따르면 חָסֵר(하사르)는 "결핍되다, 부족하다, 모자라다"를 의미합니다. 강한 부정어 לֹא(로)가 앞에 붙어 "나는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강력한 확신의 선언이 됩니다. 주목할 것은, 이것이 다윗의 현실이 풍족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울에게 쫓기며 광야를 헤매던 그가 이 고백을 드렸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 상황이 아니라 오직 목자이신 여호와를 근거로 한 믿음의 선언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해설: 빌립보서 4장 19절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약속합니다. 이것은 시편 23편 1절의 신약적 성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 안에서도 이 확신을 가졌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먼저 구하는 삶 속에 하나님의 완전한 공급이 따라옵니다. 이것이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증거하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적용: 지금 여러분의 삶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습니까? 건강, 재정, 관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면 내게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를 따르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수단인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우리를 완전한 성화의 길로 인도하실 때, 우리는 이 확신을 날마다 경험하게 됩니다.
맺는말[Conclusion]:
이 한 구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성경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깊은 믿음의 선언 중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하나님은 막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언약의 이름 여호와(야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나의 목자"로서 개인적으로 돌보시며,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확신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은 목자를 따르는 양의 여정입니다. 때로는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고, 때로는 원수의 목전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윗이 광야 도주 중에도, 왕좌에 있을 때도 변함없이 이 고백을 붙들었듯이, 우리도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이 고백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예배 후 여러분이 이 고백을 마음에 품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광야 같은 일상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선언하십시오. 그 선언이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은혜의 수단인 예배와 기도와 말씀을 통해 목자의 음성을 날마다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 목자를 따르십시오. 그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기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당신이 나의 목자이심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약속을 붙들고 오늘 하루도 당신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시편 23편 1절에서 "여호와"(야훼)라는 언약의 이름과 일반적인 "하나님"(엘로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 차이가 우리의 신앙 고백에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지닙니까?
2. "나의 목자"라는 고백이 지식의 차원을 넘어 삶의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 성도로서 어떤 구체적인 신앙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3. 다윗은 광야와 위기 가운데서도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오늘 나의 삶에서 이 확신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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