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4편 8절 John의 칼럼 - 맛보아 아는 선하심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살다 보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와닿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음식이 그렇다. 맛집이라는 소문을 백 번 들어도 한 숟갈 떠먹어 본 사람의 한마디를 따라가지 못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그렇게 소개한다. 하나님은 논쟁으로 증명하실 분이 아니라 직접 경험해 보라고 초대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 짧은 한 절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첫 번째 말은 "일단 한번 맛보라"는 권유다.

여기서 '맛보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타암'(טָעַם)이다. 혀끝으로 음식의 맛을 가려내는 일을 뜻한다. 한 번 슬쩍 건드려 보는 정도가 아니라 입에 넣고 음미하는 행위다. 그런데 이 시편의 배경을 알면 이 단어가 더 묵직하게 들린다. 다윗이 블레셋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하며 겨우 목숨을 건진 뒤에 쓴 노래이기 때문이다. 쫓기던 사람이 낭떠러지 끝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고백한다. 형편이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가장 막막한 자리에서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고백은 가볍지 않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알기 위해 먼저 확신부터 얻으려 한다. 의심이 풀리고 모든 질문에 답이 나와야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편은 순서를 거꾸로 놓는다. 맛보아야 안다는 것이다. 알고 나서 맛보는 것이 아니라 맛보아야 알게 된다. 기도 한 번, 감사 한 번, 용기 내어 맡겨 보는 한 번의 순종이 그 시작이다. 머리로만 서성이던 사람이 삶으로 한 발 들어설 때 하나님은 비로소 '소문'에서 '경험'이 되신다.

'선하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토브'(טוֹב)는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뜻만 담고 있지 않다. 좋다, 유익하다, 아름답다,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는 넓은 의미를 품고 있다. 천지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을 때 쓰인 바로 그 단어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차갑게 옳은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삶에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감시와 심판이기보다 먼저 돌봄과 선의라는 사실, 이것이 이 구절의 중심이다.

그렇다면 맛본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시편은 "그에게 피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이어 간다. '피하다'는 '하사'(חָסָה)로, 폭풍을 피해 그늘 아래, 날개 아래로 숨어드는 모습을 그린다. 우리는 힘이 있을 때는 스스로 서 있다고 믿다가 한계에 부딪혀서야 피할 곳을 찾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귀찮아하지 않으신다. 지치고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달려드는 사람을 받아 주신다. 복은 강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피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니 이번 한 주, 하나님을 설명하려 애쓰기보다 한 번 맛보는 일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다. 오늘 하루 중 감사할 일 한 가지를 소리 내어 말해 보고, 걱정거리 하나를 기도로 맡겨 보는 것이다. 작은 순종 하나가 입안에 남는 맛처럼 우리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다. 소문으로 듣던 하나님이 내 삶의 하나님이 되시는 순간, 성도의 하루는 전혀 다른 맛을 내기 시작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을 '소문'으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경험'으로 알고 있는가?
2.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께 피해야 할 폭풍은 무엇인가?
3. 이번 주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기 위해 실천할 작은 순종은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시편 34편 8절  John의 강해 - 맛보아 알라

제목: 맛보아 알라
구절: 시편 34편 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을 말할 때 머리로 아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입으로 맛보라고 권합니다. 이 시는 그가 가장 초라한 도망자의 처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겪은 뒤 지은 노래입니다. 오늘 본문 한 절에는 맛봄과 앎, 선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분께 피하는 자의 복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직접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8절 상반절)

강해: 본문은 "너희는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초대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 '타암(טָעַם)'은 음식을 입에 넣어 맛을 본다는 뜻으로, 구경이나 소문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 시를 블레셋 왕 앞에서 미친 체하다 쫓겨난 뒤에 지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가장 초라한 순간에 그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몸으로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권면은 이론이 아니라 증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음식이라도 소문만 들어서는 맛을 알 수 없고, 한 입 먹어 보아야 압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명만 들으라 하지 않으시고 직접 맛보라고 초대하십니다.

해설: 칠십인역은 이 말씀을 '게우사스데(γεύσασθε)'로 옮겼습니다. 히브리서 6장 4-5절은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라고 하여 구원의 체험을 맛봄으로 표현합니다. 시편 119편 103절도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먼저 애써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의 입맛을 열어 주시는 선행적 은총 덕분입니다. 맛보라는 초대는 이미 시작된 은혜 위에서 주어집니다.

적용: 이번 한 주간은 말씀을 의무로 읽지 마시고 한 구절을 천천히 입에 머금듯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도 요구 목록으로만 채우지 말고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으로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직접 맛본 성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2. 선하신 하나님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8절 상반절)

강해: 다윗은 맛볼 대상을 분명히 밝힙니다. 바로 "여호와의 선하심"입니다. 히브리어 '토브(טוֹב)'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뜻을 넘어 좋고 유익하며 풍성하다는 뜻을 품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건져 주시는 구체적인 은혜입니다. 시편 34편 6절은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증언합니다. 다윗이 맛본 선하심은 편안할 때 얻은 것이 아니라 막다른 길에서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편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눈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해설: 베드로전서 2장 3절은 이 말씀을 이어받아 "주가 선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권면합니다. 헬라어 '크레스토스(χρηστός)'는 선하고 자애롭다는 뜻이며, 베드로는 시편의 '여호와'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합니다. 나훔 1장 7절도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히브리서 2장 9절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려고 하심이라"고 증언합니다. 주님이 쓴 잔을 맛보셨기에 우리가 선하심의 단맛을 누립니다.

예화: 한 시골 마을에 오랜 세월 홀로 지내신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해 겨울, 몸이 불편해 병상에 누웠을 때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죽을 끓여 가져왔습니다. 권사님은 숟가락을 들다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평생 "하나님은 선하십니다"라고 입으로 말해 왔지만, 그 말이 따뜻한 죽 한 그릇의 온기로 입안에 퍼지는 것은 처음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권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설명하면 짧은데, 맛보면 끝이 없어." 선하심은 외워서 아는 교리이기 이전에 삶의 한가운데서 맛보는 은혜입니다. (가상의 예화입니다.)

적용: 지난 삶을 돌아보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선하셨던 순간 세 가지를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족과 교우에게 나누어 선하심의 맛을 전하는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에게 피하는 자가 복을 누립니다 (8절 하반절)

강해: 본문은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로 이어집니다. '피하다'는 히브리어 '하사(חָסָה)'로, 폭풍을 만난 새가 날개 아래로 숨듯 안전한 곳을 찾아 몸을 맡긴다는 뜻입니다. 시편 91편 4절은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라고 그 모습을 그립니다. 복이 있다는 말의 '아쉬레(אַשְׁרֵי)'는 행복하다, 평탄한 길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도망자였지만 하나님께 피한 자였기에 복되었습니다. 복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 가운데서 피할 곳이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맛본 사람은 자연스레 그분께로 피하게 됩니다.

해설: 시편 2편 12절도 "무릇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로 시편 전체의 서두를 맺습니다. 시편 34편 19절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여, 피하는 자에게 고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고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약속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초대와 같은 뜻입니다. 이 맛봄에서 피함으로, 피함에서 복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본문의 은혜입니다.

적용: 요즘 마음을 짓누르는 염려가 있다면 혼자 끌어안지 마시고 오늘 밤 무릎 꿇고 주님의 날개 아래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힘든 이웃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힘쓰겠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시편 34편 8절은 우리를 이론의 자리에서 체험의 자리로 부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말은 누구나 들었지만, 그 선하심을 입에 대어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윗은 가장 낮은 곳에서 그 맛을 보았고, 이제 우리에게 같은 은혜의 식탁으로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 초대는 하나님이 먼저 베푸신 선행적 은총 위에서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나아가면 됩니다.

그 식탁의 주인은 십자가에서 죽음의 쓴잔을 맛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쓴 것을 드셨기에 우리는 단 것을 얻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강해서가 아니라 선하신 분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맛본 성도는 더 이상 세상의 허기진 약속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삶의 폭풍 앞에서는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복이 있는 자가 되어 맛본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이 한 주간 우리 모두가 "여호와는 선하시다"고 삶으로 고백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선하신 하나님, 말씀으로만 알던 주님의 선하심을 삶 가운데서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 환난 날에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는 믿음을 주시고, 맛본 은혜를 이웃과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소문이나 지식으로만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 속에서 직접 맛본 경험이 있습니까?
2. 요즘 내가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스스로 붙들고 있는 염려는 무엇입니까?
3. 내가 맛본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번 주에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시편 34편 8절 John의 묵상 - 맛보고 피하는 복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편은 다윗이 블레셋 왕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간신히 풀려난 뒤에 부른 노래로 전해집니다. 생사의 경계에서 건짐받은 사람이 입술로 드리는 고백이기에, 이 시의 한복판에 놓인 8절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초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선하십니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와서 직접 맛보라고 권합니다.

"맛보아"로 옮겨진 히브리어 '타아무(טַעֲמוּ)'는 혀로 맛을 본다는 뜻입니다. 음식 맛은 남이 대신 보아 줄 수 없고, 직접 입에 넣어야 압니다. 많은 성도가 하나님에 대해 듣고 배우지만, 정작 하나님을 맛보는 일에는 머뭇거립니다. 다윗은 지식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를 체험의 자리로 이끕니다.

이어지는 '우레우(וּרְאוּ)'는 "보라"는 뜻입니다. 맛본 뒤에 보게 된다는 순서가 놀랍습니다. 먼저 한 걸음 믿고 나아가 은혜를 맛볼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일하심이 눈에 들어옵니다. 웨슬리도 신앙에는 하나님을 느끼고 알아보는 영적 감각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맛보고 볼 대상은 하나님의 '선하심', 곧 '토브(טוֹב)'입니다. 이 선하심은 형편이 좋을 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쫓기는 도망자의 처지에서 이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환경이 아니라 그분의 본성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맛봅니까? 시인은 "그에게 피하는 자"라고 답합니다. '하사(חָסָה)'는 폭풍을 피해 보호처로 달려가 숨는다는 뜻으로, 새끼가 어미 날개 아래로 파고드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을 시인은 '아쉬레(אַשְׁרֵי)', 곧 복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품으로 달려 들어간 사람이 맛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피할 곳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염려와 두려움 앞에서 스스로 버티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먼저 피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품에서 하루 한 가지 은혜를 맛보는 사람은 어느새 하나님의 선하심을 눈으로 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에서 직접 맛본 경험이 있습니까?
2. 지금 내가 하나님께 피하지 못하고 스스로 붙들고 있는 염려는 무엇입니까?
3. 오늘 하루 중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기도합시다:

선하신 하나님, 말로만 알던 주님의 선하심을 오늘 삶의 자리에서 맛보게 하옵소서. 염려가 몰려올 때 주님의 날개 아래로 먼저 피하는 성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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