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8장 10절 John의 칼럼 - 기쁨이 힘이다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눠 주라 이는 우리 주의 거룩한 날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많은 사람이 형편이 좋아져야 기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월급이 오르고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일이 술술 풀려야 웃음이 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느헤미야 8장 10절은 순서를 거꾸로 말한다. 기쁨은 힘이 생긴 뒤에 따라오는 보상이 아니라, 힘을 길어 올리는 샘이라는 것이다. 지쳐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 말씀은 낯설면서도 반갑다.

당시 백성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은 뒤였다. 큰일을 마쳤으니 마음이 가벼울 법한데, 수문 앞 광장에 모인 그들은 학사 에스라가 읽어 주는 율법책을 새벽부터 정오까지 들으며 눈물을 쏟았다. 말씀 앞에 서 보니 자신들이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떠나 있었는지가 보였던 것이다. 성벽은 세웠어도 마음은 아직 무너져 있었다.

바로 그때 느헤미야가 일어나 말한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잘못을 깨닫고 흘리는 눈물은 귀하다. 그러나 눈물에서 멈추면 사람은 자책의 늪에 빠진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는 까닭은 우리를 주저앉히려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다시 일어서게 하려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리에서 용서의 잔치로 초대받는다는 사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반전이다.

이 구절의 단어를 조금 들여다보자. '기쁨'은 히브리어로 헤드바(חֶדְוָה)인데, 마음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상태를 가리킨다. '힘'으로 번역된 마오즈(מָעוֹז)는 본래 '요새'나 '피난처'를 뜻하는 말이다. 곧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거센 파도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는 든든한 성채라는 뜻이다. 기쁨의 대상이 환경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여호와이시니, 상황이 흔들려도 그 요새는 무너지지 않는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눠 주라"는 당부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잔치는 혼자 배불리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워 잔칫상을 차리지 못한 이웃의 몫까지 챙기라는 것이다. 기쁨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진다. 밥 한 끼, 따뜻한 안부 한마디를 건네는 순간 내 안의 기쁨도 함께 자란다.

그러니 마음이 무겁고 몸이 지친 이들이여, 기쁨을 얻으려고 형편이 풀리기만 기다리지 말자.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헤아려 보자. 그리고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따뜻함을 나누어 보자. 그렇게 걸어갈 때 성도의 마음에는 어느새 어떤 어려움도 막지 못하는 힘이 차오를 것이다. 기쁨이 힘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기쁨이 형편이 좋아진 뒤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힘의 뿌리라고 생각하는가?
2. 요즘 내 마음을 짓누르는 근심은 무엇이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3. 이번 주에 '준비하지 못한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작은 기쁨은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느헤미야 8장 10절 John의 강해 - 기쁨이 우리의 힘

제목: 기쁨이 우리의 힘
구절: 느헤미야 8장 10절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몫을 보내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헤미야 8장은 성벽이 재건된 뒤, 백성이 광장에 모여 율법의 말씀을 듣는 장면입니다. 말씀을 들은 백성은 자신들의 죄와 부족함을 깨닫고 울었습니다. 그때 지도자들은 울지 말고 기뻐하라고 선포합니다. 근심이 많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말씀 앞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은혜의 식탁으로 나아가십시오 (10절 상반절)

강해:
본문은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백성에게 내려진 첫 번째 명령은 뜻밖에도 잔치였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있었기에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누리라는 것입니다. '살진 것'은 기름진 음식을, '단 것'은 달콤한 음료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책감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으로 깨달았다면 이제 용서받은 자로서 은혜의 식탁에 앉으라고 초대하십니다. 슬픔에 오래 머무는 신앙은 말씀이 주는 해방의 선물을 놓치기 쉽습니다.

해설:
바로 앞 9절은 "이 날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하여 같은 뜻을 전합니다. 성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도쉬(קָדוֹשׁ)'는 '구별되었다,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날은 슬픔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날이기에 기쁨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12절은 "모든 백성이 가서 먹고 마시며 얼마를 나누어 보내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준 말씀을 밝히 이해하였음이라"고 증거합니다.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기쁨으로 반응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여, 참된 잔치의 중심이 성령 안의 기쁨임을 알려 줍니다.

적용:
주일 예배를 의무나 무거운 짐으로만 여기지 마십시오. 말씀 앞에서 회개했다면 이제 용서받은 기쁨을 누리십시오. 이번 한 주, 가족과 함께 감사의 식탁을 차리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나누며 마음껏 웃고 찬양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2. 준비하지 못한 이웃에게 몫을 보내십시오 (10절 중반절)

강해: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몫을 보내라"는 말씀은 기쁨이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귀환 후 형편이 어려워 잔치를 차릴 수 없는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배만 채우고 돌아서지 않습니다. 나눔이 없는 기쁨은 금세 시들고, 나눔이 있는 기쁨은 더욱 커집니다. 말씀으로 은혜받은 사람은 곁에 있는 연약한 이웃을 먼저 살피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이 삶에서 열매 맺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은혜는 흘러가야 살아 있는 은혜가 됩니다.

해설:
'몫'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노트(מָנוֹת)'는 나누어 주는 분깃을 가리킵니다. 에스더 9장 22절도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하여 같은 정신을 드러냅니다. 신명기 16장 14절은 절기에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할 것이며"라고 명하십니다. 구약의 절기는 처음부터 약한 이웃과 함께 누리는 자리였습니다. 신약에서도 사도행전 20장 35절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기쁨과 나눔은 언제나 함께 갑니다.

예화:
어느 시골 교회에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잔치를 열던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형편이 어려워지자 권사님은 잔치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성도들이 저마다 쌀 한 줌, 나물 한 접시를 들고 모였습니다. 그날 상에는 풍성한 음식이 차려졌고, 홀로 사는 할머니와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이 맨 윗자리에 앉았습니다. 훗날 그 할머니는 "그날 내가 먹은 것은 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며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눌 마음이 있었기에 그 잔치는 모두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기쁨은 나누는 만큼 자라납니다.

적용:
이번 주에 우리 주변에서 식탁을 준비하지 못한 이웃을 떠올려 보십시오. 홀로 사는 어르신, 어려운 가정, 새로 등록한 성도에게 작은 음식이나 안부를 전하십시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한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이 말씀을 지키는 길입니다.

3.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입니다 (10절 하반절)

강해: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는 본문의 절정입니다. 말씀은 기쁨의 이유를 환경이 아니라 여호와께 둡니다. 성벽은 재건되었으나 주변의 대적은 여전했고,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백성의 힘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힘은 억지로 웃는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든든한 보호와 능력입니다. 근심은 우리를 주저앉게 하지만,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은 다시 일어나 걷게 합니다.

해설:
'기뻐하는 것'은 히브리어 '헤드바(חֶדְוָה)'로 깊은 즐거움을 뜻하고, '힘'은 '마오즈(מָעוֹז)'로 요새, 피난처를 뜻하는 말입니다. 곧 여호와를 기뻐함이 우리를 지키는 요새가 된다는 뜻입니다. 시편 28편 7절은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받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박국 3장 18절도 환경이 무너져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는데, 여기 '기뻐하라'는 헬라어 '카이레테(χαίρετε)'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에서 '희락'은 '카라(χαρά)'로,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입니다.

적용:
근심이 밀려올 때 상황부터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부터 묵상하십시오. 아침마다 시편 한 편을 소리 내어 읽고 감사 제목 세 가지를 입으로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작은 습관이 쌓이면 어느새 어떤 어려움에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됩니다.

맺는말[Conclusion]:

느헤미야 8장 10절은 말씀 앞에서 눈물 흘리던 백성에게 잔치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복시키시고 기쁨으로 이끄시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 앞에서 부족함을 깨닫는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지 말고 은혜의 식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기쁨은 나눌 때 더욱 커집니다. 준비하지 못한 이웃에게 몫을 보내는 손길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우리 교회가 성도의 기쁨이 담을 넘어 이웃의 삶 속으로 흘러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존 웨슬리가 성결한 삶과 기쁨을 떼어 놓지 않고 가르쳤던 것처럼, 거룩함은 무거운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힘은 형편이 아니라 여호와께 있습니다. 이번 한 주도 근심 앞에서 주저앉지 말고 주님을 기뻐하며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한 우리의 기쁨은 빼앗기지 않으며, 그 기쁨이 우리를 지키는 요새가 될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삶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힘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말씀 앞에서 눈물 흘린 저희를 기쁨의 자리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며, 여호와를 기뻐하는 힘으로 날마다 일어서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말씀 앞에서 회개한 뒤에도 죄책감에 머물러 기쁨을 누리지 못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십시오.
2. 이번 주에 '준비하지 못한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나의 몫은 무엇입니까?
3. 근심이 클 때 나의 힘을 상황에서 찾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는 데서 찾고 있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느헤미야 8장 10절 John의 묵상 - 기쁨이 힘이 됩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몫을 보내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은 에스라가 읽어 주는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살아온 세월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를 울음 속에 머물게 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때 느헤미야는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회개가 우리를 절망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자리로 인도한다는 선언입니다. 죄를 깨닫는 슬픔은 은혜의 문 앞에 서게 하는 슬픔이며, 그 문을 지나면 잔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돌아온 자녀를 책망으로 맞으시지 않고 식탁으로 부르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에서 '기쁨'은 히브리어로 '헤드바트'(חֶדְוַת)이며,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깊은 즐거움을 뜻합니다. '힘'으로 옮긴 '마오즈'(מָעוֹז)는 적의 공격을 막아 주는 요새, 곧 피난처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기쁨은 기분 좋은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 주는 견고한 성과 같습니다. 헬라어 70인역은 이를 '카라'(χαρά)와 '이스퀴스'(ἰσχύς)로 옮겨, 기쁨과 힘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기쁨의 근원이 어디인지 분명해집니다. 말씀은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합니다. 형편이 좋아서 생기는 기쁨은 형편이 나빠지면 사라지지만,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는 기쁨은 환경이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성벽이 아직 허물어져 있던 때에도 백성은 이 기쁨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아직 고쳐지지 않은 성벽이 많지만, 주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우리를 지탱해 줍니다.

또한 이 기쁨은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이에게 몫을 보내라고 합니다. 기쁨은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내 식탁이 풍성해졌다면 그 풍성함 속에 빈 식탁을 가진 이웃이 떠올라야 합니다. 말씀으로 회복된 공동체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잔치의 자리로 불러들이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를 짓누르는 걱정이 있다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근심하지 말라." 그 근심을 억지로 눌러 없애라는 말씀이 아니라, 더 큰 기쁨이신 주님을 바라보라는 초대입니다. 말씀 앞에서 겸손히 울고, 용서 안에서 기뻐하며,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성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는 말씀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린 뒤, 용서받은 기쁨까지 누리고 있습니까?
2.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 자신보다 형편과 환경에 내 기쁨을 맡기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3. 이번 주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내 기쁨의 몫을 나눌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합시다:

주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죄를 깨닫고 눈물 흘리게 하시며, 그 눈물이 주님을 기뻐하는 힘으로 바뀌게 하여 주옵소서. 받은 기쁨을 이웃과 나누며 살게 하옵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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