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장 21절 John의 칼럼 - 먼저 숙이는 용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요즘 세상은 "내가 먼저"라는 말에 익숙하다. 도로 위에서도, 일터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도 양보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계는 늘 팽팽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부딪힌다. 이런 시대에 성경은 조금 낯선 말을 건넨다. 서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의 '복종'은 헬라어 '휘포타소메노이(ὑποτασσόμενοι)'에서 왔다. 본래 '아래에 질서 있게 서다'라는 뜻이다. 억지로 꺾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리를 낮추어 상대를 세워 주는 자발적인 선택이다. 게다가 '피차'에 해당하는 '알렐로이스(ἀλλήλοις)'는 '서로'라는 뜻이다. 한쪽만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낮아지자는 초대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숙여야 할까? 본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라고 답한다. '경외'로 옮긴 헬라어 '포보스(φόβος)'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이 담긴 깊은 공경을 뜻한다. 사람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숙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앞에서 산다는 의식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겸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숙임의 이유가 상대의 지위나 능력이 아니라 나를 먼저 낮추신 분께 있다.

생각해 보면 서로 숙이는 관계가 가장 단단하다. 부부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그렇다. 누군가 먼저 한 걸음 물러서면 굳게 닫혔던 대화의 문이 열린다. 이기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져 주는 법을 배울 때 관계는 오래간다. 낮아짐은 약함이 아니라 관계를 살리는 힘이다.

교회라는 공동체도 다르지 않다. 성도들이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고, 먼저 안부를 묻고, 맡은 일이 다를 뿐 귀천이 없음을 인정할 때 교회는 비로소 따뜻해진다.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작은 존중과 배려가 쌓여 공동체의 분위기를 바꾼다.

오늘 하루,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한마디를 건네 보자. "당신 말이 맞을 수 있겠네요", "내가 먼저 할게요" 같은 짧은 말이면 충분하다. 그 작은 숙임이 지친 마음을 녹이고, 오래 얼어 있던 관계에 봄을 불러올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최근 내가 "먼저 숙이지 못해" 어려워진 관계가 있다면 무엇인가?
2. 서로 복종하는 일이 '손해'가 아니라 '관계를 살리는 힘'이 되었던 경험이 있는가?
3. 오늘 내가 먼저 건넬 수 있는 존중의 말 한마디는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에베소서 5장 21절 John의 강해 - 피차 복종의 은혜

제목: 피차 복종의 은혜
구절: 에베소서 5장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복종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윗사람에게 눌리는 모습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숙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 한 절은 가정과 교회와 일터를 새롭게 하는 열쇠입니다. 복종의 이유, 복종의 범위, 복종의 모습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복종의 이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21절 상반절)

강해:
본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라는 말로 복종의 이유를 밝힙니다. 헬라어로는 '엔 포보 크리스투(ἐν φόβῳ Χριστοῦ)'이며, 직역하면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입니다. '포보스(φόβος)'는 짐승 앞에서 느끼는 공포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마땅히 품는 존경 어린 두려움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18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에서 이어진 문장의 열매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높아지지 않고 도리어 낮아집니다. 그러므로 복종은 사람의 눈치를 보는 일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해설:
잠언 9장 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함'은 히브리어로 '이르앗 아도나이(יִרְאַת יְהוָה)'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두려워하는 사람이 사람 앞에서도 바르게 낮아질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증언합니다. 우리가 복종할 수 있는 힘은 먼저 복종하신 주님께 있습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누군가에게 숙이기 어려울 때 "저 사람이 누구인가"를 묻지 말고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먼저 물으십시오. 이번 주에 마음에 걸리는 한 사람을 정하여 먼저 낮아지는 말 한마디를 건네십시오. 선행적 은총이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듯이, 우리도 먼저 다가가는 성도가 되십시오.

2. 복종의 범위: 피차 (21절 중반절)

강해:
'피차'는 헬라어로 '알렐로이스(ἀλλήλοις)'이며 '서로에게'라는 뜻입니다. 복종이 한 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임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남편만, 아내만, 자녀만, 직원만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복종합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신분과 서열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이 말씀은 전혀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하였습니다. 교회는 높은 자리를 다투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낮은 자리를 찾는 곳입니다.

해설:
빌립보서 2장 3절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먼저 옳다는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를 귀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도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권면합니다. 서로 복종하는 일은 약함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따로 없고, 서로 섬기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예화: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는 V자 대형을 이룹니다. 맨 앞의 기러기는 바람을 가장 크게 맞기 때문에 쉬이 지칩니다. 그러면 선두는 뒤로 물러나고 다른 기러기가 앞자리를 맡습니다. 이렇게 서로 자리를 바꾸며 날기에 수천 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뒤따르는 기러기들은 울음소리로 앞선 기러기를 격려한다고도 합니다. 홀로 날면 금방 지쳐 떨어질 길도 서로 맡고 서로 북돋우면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지쳤을 때 그 자리를 대신 맡아 주고, 앞선 이를 말로 격려하는 공동체가 믿음의 길을 끝까지 완주합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옮긴 것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 "내가 먼저 양보하겠소"라고 말해 보십시오. 교회에서는 늘 같은 사람에게 맡기던 수고를 이번에는 내가 대신 맡겠다고 나서십시오. 일터에서는 동료의 짐을 하나 덜어 주십시오. 피차 복종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오늘 하루의 작은 양보에서 시작됩니다.

3. 복종의 모습: 복종하라 (21절 하반절)

강해:
'복종하라'의 헬라어 '휘포타쏘(ὑποτάσσω)'는 '아래에'를 뜻하는 '휘포(ὑπό)'와 '배열하다'를 뜻하는 '타쏘(τάσσω)'가 합쳐진 말입니다. 곧 '질서 있게 아래에 자리 잡는다'는 뜻입니다. 본문의 '휘포타쏘메노이(ὑποτασσόμενοι)'는 분사형으로, 명령이면서도 성령 충만한 삶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복종은 짓눌려 억지로 하는 굴종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스스로 자리를 낮추는 자발적 순종입니다. 상대의 죄를 눈감아 주는 일도 아닙니다. 서로의 유익을 위해 내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는 일입니다.

해설:
이 복종의 본보기는 주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에서 주님은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주려 함이니라"고 증언합니다. 주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셔서 대야와 수건을 드셨습니다. 그 모습이 곧 복종의 모습이며,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는 제자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복종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가족의 설거지를 대신하든, 교우의 짐을 들어 주든, 낮은 자리의 일을 기꺼이 맡으십시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이 보고 계십니다. 대야와 수건을 든 작은 섬김이 우리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갑니다.

맺는말[Conclusion]:

에베소서 5장 21절은 짧지만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담은 말씀입니다. 복종의 이유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에 있습니다. 사람이 무서워서도, 손해 볼까 걱정되어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먼저 낮아지신 주님을 바라보기에 우리도 낮아지는 것입니다.

복종의 범위는 피차, 곧 모두입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어른과 아이, 남편과 아내가 따로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공동체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서로 섬김이 살아 있는 가정과 교회에는 다툼 대신 평안이, 경쟁 대신 감사가 흐릅니다.

복종의 모습은 억지가 아니라 성령 충만에서 흘러나오는 자발적 섬김입니다. 대야와 수건을 드신 주님을 따라 오늘 한 걸음 낮은 자리로 내려가십시오. 그곳에서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한 주간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이 우리 삶의 자리마다 열매로 맺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먼저 낮아지신 그 사랑을 바라보며 우리도 서로를 섬기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기꺼이 자리를 낮추는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복종하기 어렵습니까? 그때 나의 마음은 사람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보고 있습니까?
2. '피차 복종'을 가정과 교회에서 실천하려면 이번 주에 내가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 억지로 하는 굴종과 성령 충만에서 나오는 자발적 복종은 내 삶에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납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에베소서 5장 21절 John의 묵상 - 서로 복종하는 은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에베소서 5장 21절은 짧지만 교회와 가정의 모든 관계를 여는 열쇠와 같은 말씀입니다. 바로 앞 18절에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하신 뒤에, 그 충만함의 열매로 이 구절이 이어집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의 모습은 큰 소리나 화려한 체험보다 서로에게 몸을 낮추는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복종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먼저 불편함을 느낍니다. 내 권리를 빼앗기고 눌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복종하라'는 헬라어 '휘포타쏘메노이(ὑποτασσόμενοι)'로, '질서 있게 아래에 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스스로 기꺼이 자리를 내어 주는 자발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강요된 굴종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자기 내어줌입니다.

이 복종의 이유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입니다. '경외'는 헬라어 '포보스(φόβος)'로, 두려움과 존경을 함께 담은 말입니다. 사람이 무서워서 숙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두렵고 귀하시기에 사람 앞에서도 낮아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 모신 성도는 이웃 앞에서 자기를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피차'는 헬라어 '알렐로이스(ἀλλήλοις)'로 '서로'를 뜻합니다. 한쪽만 참고 한쪽만 이기는 관계가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흐르는 섬김입니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목회자와 성도가 모두 이 말씀 아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마음입니다.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랑으로 가득한 거룩한 삶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선행적 은총으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시면, 그 사랑이 이웃을 향해 흘러가게 됩니다. 서로 복종하는 삶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이루시는 이 사랑이 일상에서 취하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의지로 쥐어짜는 덕목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열매입니다.

오늘 하루,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내 주장을 먼저 내려놓는 작은 복종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내가 옳다"는 말보다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태도를 먼저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작은 순종 위에 놀라운 화평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누구 앞에서 내 주장을 내려놓기 어려워하고 있습니까?
2. 내가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에서 나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황과 감정에서 나오고 있습니까?
3. 오늘 성령께서 내게 '서로 복종'의 본을 보이라고 하시는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도합시다:

주님, 성령의 충만함으로 제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웃 앞에서 낮아지는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가정과 교회 안에 서로 섬기는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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