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4편 8절  John의 강해 - 맛보아 알라

제목: 맛보아 알라
구절: 시편 34편 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을 말할 때 머리로 아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입으로 맛보라고 권합니다. 이 시는 그가 가장 초라한 도망자의 처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겪은 뒤 지은 노래입니다. 오늘 본문 한 절에는 맛봄과 앎, 선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분께 피하는 자의 복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직접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8절 상반절)

강해: 본문은 "너희는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초대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 '타암(טָעַם)'은 음식을 입에 넣어 맛을 본다는 뜻으로, 구경이나 소문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 시를 블레셋 왕 앞에서 미친 체하다 쫓겨난 뒤에 지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가장 초라한 순간에 그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몸으로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권면은 이론이 아니라 증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음식이라도 소문만 들어서는 맛을 알 수 없고, 한 입 먹어 보아야 압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명만 들으라 하지 않으시고 직접 맛보라고 초대하십니다.

해설: 칠십인역은 이 말씀을 '게우사스데(γεύσασθε)'로 옮겼습니다. 히브리서 6장 4-5절은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라고 하여 구원의 체험을 맛봄으로 표현합니다. 시편 119편 103절도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먼저 애써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의 입맛을 열어 주시는 선행적 은총 덕분입니다. 맛보라는 초대는 이미 시작된 은혜 위에서 주어집니다.

적용: 이번 한 주간은 말씀을 의무로 읽지 마시고 한 구절을 천천히 입에 머금듯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도 요구 목록으로만 채우지 말고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으로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직접 맛본 성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2. 선하신 하나님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8절 상반절)

강해: 다윗은 맛볼 대상을 분명히 밝힙니다. 바로 "여호와의 선하심"입니다. 히브리어 '토브(טוֹב)'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뜻을 넘어 좋고 유익하며 풍성하다는 뜻을 품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건져 주시는 구체적인 은혜입니다. 시편 34편 6절은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증언합니다. 다윗이 맛본 선하심은 편안할 때 얻은 것이 아니라 막다른 길에서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편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눈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해설: 베드로전서 2장 3절은 이 말씀을 이어받아 "주가 선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권면합니다. 헬라어 '크레스토스(χρηστός)'는 선하고 자애롭다는 뜻이며, 베드로는 시편의 '여호와'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합니다. 나훔 1장 7절도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히브리서 2장 9절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려고 하심이라"고 증언합니다. 주님이 쓴 잔을 맛보셨기에 우리가 선하심의 단맛을 누립니다.

예화: 한 시골 마을에 오랜 세월 홀로 지내신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해 겨울, 몸이 불편해 병상에 누웠을 때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죽을 끓여 가져왔습니다. 권사님은 숟가락을 들다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평생 "하나님은 선하십니다"라고 입으로 말해 왔지만, 그 말이 따뜻한 죽 한 그릇의 온기로 입안에 퍼지는 것은 처음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권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설명하면 짧은데, 맛보면 끝이 없어." 선하심은 외워서 아는 교리이기 이전에 삶의 한가운데서 맛보는 은혜입니다. (가상의 예화입니다.)

적용: 지난 삶을 돌아보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선하셨던 순간 세 가지를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족과 교우에게 나누어 선하심의 맛을 전하는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에게 피하는 자가 복을 누립니다 (8절 하반절)

강해: 본문은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로 이어집니다. '피하다'는 히브리어 '하사(חָסָה)'로, 폭풍을 만난 새가 날개 아래로 숨듯 안전한 곳을 찾아 몸을 맡긴다는 뜻입니다. 시편 91편 4절은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라고 그 모습을 그립니다. 복이 있다는 말의 '아쉬레(אַשְׁרֵי)'는 행복하다, 평탄한 길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도망자였지만 하나님께 피한 자였기에 복되었습니다. 복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 가운데서 피할 곳이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맛본 사람은 자연스레 그분께로 피하게 됩니다.

해설: 시편 2편 12절도 "무릇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로 시편 전체의 서두를 맺습니다. 시편 34편 19절은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여, 피하는 자에게 고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고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약속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초대와 같은 뜻입니다. 이 맛봄에서 피함으로, 피함에서 복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본문의 은혜입니다.

적용: 요즘 마음을 짓누르는 염려가 있다면 혼자 끌어안지 마시고 오늘 밤 무릎 꿇고 주님의 날개 아래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힘든 이웃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힘쓰겠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시편 34편 8절은 우리를 이론의 자리에서 체험의 자리로 부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말은 누구나 들었지만, 그 선하심을 입에 대어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윗은 가장 낮은 곳에서 그 맛을 보았고, 이제 우리에게 같은 은혜의 식탁으로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 초대는 하나님이 먼저 베푸신 선행적 은총 위에서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나아가면 됩니다.

그 식탁의 주인은 십자가에서 죽음의 쓴잔을 맛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쓴 것을 드셨기에 우리는 단 것을 얻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강해서가 아니라 선하신 분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맛본 성도는 더 이상 세상의 허기진 약속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삶의 폭풍 앞에서는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복이 있는 자가 되어 맛본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이 한 주간 우리 모두가 "여호와는 선하시다"고 삶으로 고백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선하신 하나님, 말씀으로만 알던 주님의 선하심을 삶 가운데서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 환난 날에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는 믿음을 주시고, 맛본 은혜를 이웃과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소문이나 지식으로만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 속에서 직접 맛본 경험이 있습니까?
2. 요즘 내가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스스로 붙들고 있는 염려는 무엇입니까?
3. 내가 맛본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번 주에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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