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6장 9절 John의 묵상 -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 9절은 온 땅이 포악과 부패로 가득하던 때, 홍수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노아라는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는 단순한 가계 기록이 아닙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신실한 삶을 주목하고 계신다는 선언입니다.
본문은 노아를 "의인"이라 부릅니다. 히브리어 '차디크'(צַדִּיק)는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바른 관계 가운데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노아는 허물이 전혀 없어서 의인이라 불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었기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또한 그는 "당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완전한'에 해당하는 '타밈'(תָמִים)은 흠 없이 온전하며 마음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향해 있다는 뜻입니다. '당대에', 곧 '베도로타브'(בְּדֹרֹתָיו)라는 말은 그가 악한 시대를 피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 한복판에서 온전했음을 보여 줍니다. 웨슬리가 가르친 온전함도 죄가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본문의 절정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입니다. 히브리어 '히트할레크'(הִתְהַלֶּךְ)는 계속해서 함께 걷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칠십인역은 이를 '유에레스테센'(εὐηρέστησεν),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로 옮겼습니다. 동행은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날마다 내딛는 걸음이며, 그 걸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이 동행은 노아의 의지만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시고 손을 내미셨기에 노아가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웨슬리가 강조한 선행적 은총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고 계셨고, 성도의 믿음과 순종은 그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오늘 우리도 노아처럼 세속의 물결 한가운데 살아갑니다. 환경을 탓하기보다 오늘 하루 주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 일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기도로 하루를 열고, 말씀대로 작은 순종을 쌓아 가는 그 걸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내가 살아가는 일터와 가정에서 "당대에 온전한 자"로 서려면 오늘 어떤 선택이 필요합니까?
2.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나의 하루 일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3. 내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신 선행적 은총을 언제 경험했습니까?
기도합시다:
주님,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노아처럼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성도 되게 하소서. 먼저 찾아오신 은혜를 기억하며 작은 순종으로 응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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