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17절 John의 칼럼 - 생명의 길, 순종의 열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오늘 우리는 '인간의 삶과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말씀을 묵상한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두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에 대한 명확한 금령은 단순한 옛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구원의 드라마가 시작된 지점'이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신앙의 원리'를 담고 있다.

창세기 2장 17절의 이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적 관계'를 규정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지만, 그 자유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금지된 열매는 곧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한다. 인간이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유일한 통치자로 인정'하는 '사랑과 충성의 증표'였다. "먹지 말라"는 명령 속에는 인간의 행복과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자 하셨고, 그 생명의 길은 오직 '순종이라는 좁은 문'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 명령을 어겼고, 그 결과는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엄중한 선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히 육체의 소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영적인 죽음',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비극적 사건이다. 죄는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키고,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켰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전적인 무능력' 가운데 빠지게 되었다.

이 원죄의 결과,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의 멍에'를 지고 있다. 우리의 의지(Will)는 '죄에 사로잡혀'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처럼 인간이 '선악을 '스스로' 알려고 했던 오만'은 곧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자신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가장 근본적인 죄'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빛을 발한다. 비록 원죄로 인해 인간의 본성이 타락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을 베푸신다. 이 은총은 '구원을 위한 첫걸음'이며,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을 깨우쳐 '하나님의 명령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능력'을 아주 희미하게나마 부여한다. 우리는 이 은총을 통해 '죄의 실상을 깨닫고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후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성결(Holiness)''을 향한 '끊임없는 전진'이다. 선악과를 금지하신 명령이 '순종의 완벽한 본보기'였듯이, 우리는 이제 율법과 계명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뜻에 전심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외적인 행위를 넘어선, '내면의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한다. 성결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삶을 통해 완성된다.

결국, 창세기 2장 17절의 교훈은 명확하다. '생명은 순종에 있으며, 죽음은 불순종에 있다.' 우리는 아담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선행적 은총을 붙잡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완전한 성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거룩함에 정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확실한 길'임을 기억하라. '주님 안에서 늘 순종하며 살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존 웨슬리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 개념을 창세기 2장 17절의 '죽음'이라는 결과와 어떻게 연결하여 해석할 수 있는가?

2. 오늘날 우리 삶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의 구체적인 예는 무엇이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성결의 실천적 방안은 무엇인가?

3.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금령을 주신 동기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웨슬리의 관점을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적 자유 개념과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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