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36절 John의 칼럼 - 믿음의 접촉과 전인적 은총의 회복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게네사렛 땅의 사람들은 예수의 등장을 목격하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모든 병든 자를 주님께 데려왔으며, 이는 단순히 육체적 고통의 해결을 넘어선 구원을 향한 갈망의 표현이었다. 존 웨슬리의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의 열망은 이미 그들 마음속에 일하고 있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의 결과이다. 인간이 스스로 주님을 찾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이 장면은 분명히 보여준다.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를 간구했다는 사실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옷자락은 가장 낮은 곳이자 가장 보잘것없는 부분일 수 있으나, 살아있는 믿음은 그 작은 접촉을 통해 하나님의 거대한 능력에 연결된다. 이는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과 같다. 성만찬, 기도, 성경 읽기라는 가시적인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총이 우리에게 전달되듯, 옷자락이라는 매개체는 믿음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통로가 된다.

믿음은 결코 정적인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간구하니"와 "손을 대는 자"라는 표현은 믿음이 외적인 행동과 결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존 웨슬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것으로 보았다. 진정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향해 손을 뻗는 능동성을 수반한다. 마음의 확신은 반드시 주님의 능력에 자신을 내맡기는 구체적인 결단과 행위로 나타나야 하며, 이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다 나음을 얻으니라"는 선언은 하나님의 은총이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임함을 선포한다.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막론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모든 이에게 치유의 문은 열려 있다. 이는 만인을 위한 구원(Universal Redemption)을 역설한 웨슬리의 신학적 확신과 일맥상통한다. 하나님의 자비는 제한되지 않으며, 오직 믿음의 응답을 통해 모든 영혼에게 흘러 들어간다.

치유는 단순히 육체적 질병의 회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헬라어 문맥에서의 치유는 전인적인 온전함(Wholeness)을 포함한다. 웨슬리는 성화(Sanctification)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는 과정을 중시했다. 옷자락을 만진 자들이 얻은 나음은 육체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영적 질서의 재정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성도들 역시 세상 속에서 예수의 옷자락을 찾아야 한다. 일상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웃과의 만남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신뢰하며 손을 뻗어야 한다. 개인의 경건과 사회적 성화는 분리될 수 없다. 주님의 은총에 접촉한 이들은 이제 세상의 상처를 치유하는 또 다른 '은총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진 자들이 걸어가야 할 성화의 길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오늘날 우리가 일상 속에서 붙잡아야 할 '예수의 옷자락(은총의 수단)'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 '간구함'과 '손을 대는 행위'가 결여된 채 관념적인 신앙에만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3. 전인적인 치유(나음)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 성화를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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