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10절 묵상 - 없는 듯 가진 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에서 자신의 사역을 증언하며, 세상의 잣대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의 언어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백합니다. 이 짧은 한 절 안에 복음이 빚어 내는 삶의 깊이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슬퍼하다'는 λυπούμενοι(뤼푸메노이), '기뻐하다'는 χαίροντες(카이론테스)로, 두 단어 모두 현재 분사형입니다. 슬픔도 기쁨도 순간이 아니라 지속되는 삶의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그 사이에 놓인 전환의 접속사 δέ(데), '그러나' - 바로 이 자리가 은혜가 침투하는 틈새입니다.

존 웨슬리는 이 구절을 주석하며, '슬픔'은 우리 자신의 수많은 결점과 이웃의 죄와 고통 때문이며, '항상 기뻐함'은 현재의 평화·사랑·능력, 그리고 미래 영광의 확실한 소망 안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만물이 우리의 것"이라고 선언하며, "이 얼마나 장엄한 사상인가!"라고 탄성을 더합니다.

웨슬리 신학의 선행적 은총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비어 있는 자리에서 먼저 찾아오십니다. πλουτίζοντες(플루티존테스), '부요케 하다'는 복음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원한 부를 나누어 주는 사역입니다. 성도는 세상 소유가 없어 보여도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자로, 타인을 풍성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오늘 직장과 가정에서 근심과 결핍을 느낄 때, 아무것도 없는 자처럼 여겨질 때, 바울의 고백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πάντα κατέχοντες(판타 카테콘테스), '모든 것을 소유한 자' - 이것이 세상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 앞에 선 성도의 참된 정체성입니다.

우리 삶의 역설이 탄식으로 끝나지 않고 성령 안에서 기쁨의 고백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아무것도 없는 자로 볼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오늘 이 역설이 우리 삶 안에서 살아 숨쉬는 은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어디입니까? 그 기쁨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2. 내가 받은 복음의 부요함을 주변의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흘려보낼 수 있습니까?

3.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고백이 나의 일상 현실이 되려면, 어떤 믿음의 전환이 필요합니까?

기도합시다:

근심과 결핍의 자리에서도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시고, 저희를 통해 많은 영혼이 그리스도의 풍성함으로 부요케 되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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