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12장 18절 John의 강해 - 평화를 향한 나의 몫
제목: 평화를 향한 나의 몫
구절: 로마서 12장 18절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서론: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사람 사이의 평화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음 상하는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친 뒤, 단 한 절로 평화의 길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은 무엇이며, 어디부터가 하나님께 맡길 몫일까요? 로마서 12장 18절을 통해 평화를 이루는 성도의 길을 함께 배우겠습니다.
1. 할 수 있거든 (18절 상반절)
강해: 바울은 먼저 "할 수 있거든"이라고 말합니다. 헬라어 '에이 뒤나톤'(εἰ δυνατόν)은 "가능하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평화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애써도 이루어지지 않는 평화가 있음을 인정하는 정직한 표현입니다. 진리를 버려야 얻는 평화, 악을 모른 체해야 유지되는 평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가능한 길을 모두 찾아본 뒤에야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는 무거운 책임도 담겨 있습니다.
해설: 히브리서 12장 14절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며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평화와 거룩은 함께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갈등을 피해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화평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할 수 있거든"은 핑계의 문이 아니라 끝까지 애쓰라는 부르심입니다.
적용: 이번 한 주, 마음이 막혀 있는 사람 한 명을 떠올려 보십시오. 안부 문자를 보내거나 그 사람을 위해 짧게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 보았는가"를 정직하게 점검해 보십시오. 평화는 큰 결단보다 작은 첫걸음에서 시작됩니다.
2. 너희로서는 (18절 중반절)
강해: 바울은 이어서 "너희로서는"이라고 말합니다. 헬라어 '토 엑스 휘몬'(τὸ ἐξ ὑμῶν)은 "너희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평화는 두 사람이 함께 이루는 것이지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뿐입니다. 상대가 사과하든 하지 않든, 돌아서든 말든, 나의 말과 태도와 마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결과가 아니라 나의 몫에 집중하라고 가르칩니다.
해설: 바로 앞 17절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합니다. 내 몫이란 악을 되갚지 않는 것이며, 선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19절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이어갑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심판과 판결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다. 내 몫과 하나님의 몫을 구분할 때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고, 평화를 향한 걸음도 꾸준해집니다.
예화: 어느 시골 교회에 오랫동안 말을 섞지 않는 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작은 오해가 쌓여 십 년 가까이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습니다. 어느 겨울 새벽, 눈이 많이 쌓인 날이었습니다. 한 장로님이 말없이 빗자루를 들고 가서 상대 장로님 집 앞길을 쓸어 놓고 돌아왔습니다. 그 길을 따라 나오던 장로님은 한참을 서 계셨다고 합니다. 며칠 뒤 두 분은 예배당 앞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누가 먼저 사과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한 사람이 자기 몫의 빗자루를 든 것이 평화의 시작이었습니다. 평화는 상대가 변하기를 기다리는 데서가 아니라, 내 손에 든 빗자루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적용: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며 마음을 닫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정하십시오. 비난의 말 하나를 거두는 것, 먼저 인사하는 것, 험담 자리를 조용히 떠나는 것도 좋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 몫만 신실하게 감당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3.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18절 하반절)
강해: 바울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권면합니다. 헬라어 '메타 판톤 안트로폰 에이레뉴온테스'(μετὰ πάντων ἀνθρώπων εἰρηνεύοντες)에서 '모든 사람'에는 가족, 이웃, 동료뿐 아니라 나를 아프게 한 사람도 포함됩니다. '에이레뉴오'는 평화롭게 지낸다는 뜻이며, 계속되는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어 '샬롬'(שָׁלוֹם)도 다툼이 없는 상태를 넘어 관계가 온전하고 안녕한 상태를 뜻합니다. 성도의 평화는 한 번의 화해로 끝나지 않고 삶 전체로 이어집니다.
해설: 시편 34편 14절은 "악을 떠나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평화는 가만히 있으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평화의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선행적 은총으로 먼저 다가오셨고, 에베소서 2장 14절은 그분을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라고 증언합니다. 존 웨슬리도 복음에는 이웃과 상관없는 홀로 된 성결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성결은 이웃과 함께 사랑하는 삶 속에서 드러납니다.
적용: 평화의 대상을 나와 맞는 사람으로만 좁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먼저 내게 평화를 베푸셨음을 기억하며,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한 걸음씩 평화를 찾아 따라가십시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내가 먼저"라는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맺는말[Conclusion]:
로마서 12장 18절은 우리에게 평화를 향한 정직한 길을 보여 줍니다. "할 수 있거든"은 끝까지 애쓰되 한계를 인정하라는 말씀이고, "너희로서는"은 결과가 아니라 내 몫에 신실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을 향해 평화의 문을 열어 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화평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분이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셨기에, 우리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상대가 응답하지 않아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감당할 몫은 신실함이고,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 마음속에 걸려 있는 이름 하나를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평화의 행동 하나를 실천해 보십시오. 그 작은 순종 위에 주님이 평화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신 약속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 위에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평화의 주님, 먼저 저를 찾아오셔서 화평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신실하게 감당하게 하시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찾아 따르는 성도 되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지금 내 마음에 걸려 있는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 평화를 위해 애쓰는 것과 진리를 포기하는 것의 차이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3. 하나님이 먼저 내게 베푸신 평화를 기억할 때,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향한 마음이 어떻게 달라집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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