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장 30절 John의 칼럼 - 은총의 역설, 먼저 된 자의 위기와 나중 된 자의 소망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인간이 구축한 세상의 질서는 철저히 서열과 기득권에 기초한다. 앞선 자는 영원히 앞서기를 원하고, 뒤처진 자는 그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질서는 이러한 인간적 계산법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이 역설적인 말씀은 단순히 순서의 뒤바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공로와 종교적 형식주의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자 동시에 소외된 자들을 향한 무한한 은총의 약속이다.

먼저 된 자들이 나중 되는 비극은 흔히 영적 자만과 안일함에서 비롯된다. 오랫동안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는 자부심이나 종교적 의무를 완수했다는 자기만족은 오히려 살아있는 믿음의 불꽃을 꺼뜨리는 장애물이 된다. 신앙의 형식을 갖추었으나 그 내면의 본질인 사랑과 거룩함의 능력을 상실할 때, 그 영혼은 서서히 뒤로 밀려나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 멈춘 자리는 차가운 율법주의와 도덕적 자아도취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반면, 세상에서 소외되고 스스로를 자격 없는 자로 여기는 이들에게 이 선포는 거대한 소망의 빛이다. 하나님의 선행 은총은 인간의 과거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모든 영혼을 부르신다. 자신이 '나중 된 자'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전적인 하나님의 자비에 매달리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단번에 영적 선두로 나아갈 수 있다. 은총은 자격을 갖춘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오직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의 길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과정이다. 한번 앞섰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영혼을 지배하게 하는 성화의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어제 받은 은혜에만 머물러 있는 신앙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오늘 새롭게 공급되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만이 신자를 참된 의미의 '먼저 된 자'로 머물게 한다.

이러한 영적 원리는 사회적 책임과도 직결된다. 부와 명예를 소유하여 세상에서 먼저 된 자들이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개인의 안락함만을 추구한다면, 그들은 영적으로 가장 나중 된 자가 될 위험에 처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앞서가는 삶이란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삶이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선두의 자리를 보장한다.

결국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구분은 인간의 외적인 조건이나 종교적 경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겸손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깊이에 달려 있다. 영적 경주에서 중요한 것은 출발점의 위치가 아니라 끝까지 견디며 정진하는 신실함이다. 스스로가 '먼저 된 자'라는 착각을 버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첫 마음을 회복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하늘 나라의 풍성한 보상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과거의 신앙 경력이나 종교적 형식에 안주하여 현재의 영적 성장을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2. 내 주변의 '나중 된 자'들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에게 은총을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가?

3. 성화의 과정에서 매일 새롭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채우기 위해 내가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경건 훈련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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