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0장 28절 John의 칼럼 - 섬김과 희생: 하늘 나라의 거룩한 역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세상의 질서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다스리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에 기반한다.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에 올라 대접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세상의 가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엎으셨다. 영광의 주인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군림이 아닌 비움에 있었다. 이는 단순히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차원을 넘어, 존재의 목적 자체가 타인을 향한 헌신에 맞춰져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인자'의 모습은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정의한다. 경건은 성전 안에만 머무는 관념적 유희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타인의 발을 씻기는 구체적 행동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반드시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선행으로 나타나야 한다. 섬김은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맺어야 할 성화의 열매이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타인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이다.
본문에서 언급된 '섬기려 하고'라는 표현은 일시적인 봉사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방향성을 의미한다. 웨슬리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성결이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홀로 거룩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을 섬길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다가갈 수 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교회에 부여된 가장 고귀한 사명이자 성도가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이다.
특히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는 대목은 섬김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서 '대속물'은 모든 인류를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된 거룩한 값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보편적 은총의 증거로서, 어느 누구도 이 구원의 소망에서 제외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분이 생명을 내어놓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듯이, 성도의 삶 또한 누군가에게 생명과 소망을 주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희생이 없는 섬김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며, 자기 부정의 과정이 생략된 헌신은 자기 의(義)로 흐르기 쉽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대속의 가치를 깨달아,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타인을 위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 이러한 삶은 세상의 눈에는 미련해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자로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다. 매 순간 자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웃을 대할 때 비로소 대속의 은혜는 우리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된다. 섬김은 의무를 넘어 성도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다.
결국, 섬김과 희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시작과 끝이다. 주님이 오신 목적이 그러하셨듯, 성도의 존재 목적 또한 세상을 향한 사랑의 빚을 갚는 데 있다. 권위와 명예를 탐하는 유혹을 물리치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소외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실천적 신앙이 절실하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랑을 온몸으로 살아낼 때, 어두운 세상은 비로소 하늘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고, 낮아짐으로써 높아지는 복음의 거룩한 역설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그리스도의 '대속물' 되심이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 실천과 구체적으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2. '사회적 성결'을 이루기 위해 현대 그리스도인이 포기해야 할 세상적인 '권리'는 무엇인가?
3. 섬김의 동기가 '자기 만족'이나 '자기 의'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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