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37절 칼럼 - 온전한 사랑, 성결의 심장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종교의 본질은 외적인 형식이나 딱딱한 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즉 마음의 할례에서 시작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단순히 도덕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향한 전폭적인 신뢰와 애정을 요구한다. 이것이 성도가 걸어가야 할 첫 번째 길이자 마지막 목적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의무의 요약이며, 모든 행복의 원천이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감정의 파편이 아닌 의지의 통일성을 의미한다. 인간의 내면은 수많은 세속적 욕망으로 분산되기 쉬우나, 존 웨슬리는 이 모든 성향이 오직 한 분, 하나님께로 수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인간은 내면의 무질서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과 거룩함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게 두지 않는 것, 그것이 전심(全心)의 의미다.

'목숨을 다한다'는 표현은 생명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이는 순교적 정신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어드리는 태도를 포함한다. 자신의 안위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하는 삶, 그것이 바로 성도가 세상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며 거룩한 헌신의 실체다. 우리의 호흡이 그분의 것이듯, 우리 생애의 목적 또한 그분에게만 있어야 한다.

또한 '뜻을 다한다'는 것은 지성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다. 맹목적인 열광은 위험하며, 바른 신학적 성찰이 결여된 신앙은 길을 잃기 쉽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성은 성경을 탐구하고, 그 말씀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치열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사랑으로 뜨거워진 지성이 필요한 법이다. 지식은 사랑을 깊게 하고, 사랑은 지식을 거룩하게 만든다.

이러한 전인적인 사랑은 결코 개인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웨슬리는 '사회적 성결'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반드시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역설했다.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인 사랑의 에너지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수평적인 자비의 손길로 변모할 때 그 온전함을 증명한다. 이웃 사랑이 없는 하나님 사랑은 공허한 관념에 불과하다.

온전한 사랑이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매일 가까워져야 할 성도의 실제적 목표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는 이 길은 고단한 의무가 아니라,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축복의 통로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부를 드려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남겨둔 조각으로 형식적인 경배를 드리고 있는가.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마다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마음, 목숨,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의 일상 속 구체적인 선택(시간 사용, 재정 등)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2. 지성(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성경 공부나 경건 서적 읽기 등의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3. 내 안에 고여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이웃을 향한 '사회적 성결'로 흘러가기 위해, 이번 주에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나눔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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