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 26절 John의 강해 - 참된 경건의 시작

제목: 마음의 성결, 참된 경건의 시작
구절: 마태복음 23장 26절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종교는 결코 외적인 형식이나 의식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엄중한 경고를 보내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바리새인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외침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겉모습을 치장하기 이전에, 부패한 마음의 근원을 먼저 치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참된 성결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1. 영적 소경됨의 진단과 비극 (26절 상반절 "눈 먼 바리새인이여")

-본문 강해: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을 향해 "눈 먼 자"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육체의 시력이 아닌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눈 먼(typhlos)'이라는 표현은 진리를 보지 못하는 무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율법의 수호자라 자처하며 누구보다 잘 본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와 인과 신은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선자의 비극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병들어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종교적 열심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이러한 상태를 '마음의 종교'가 결여된 '형식적 종교'라 비판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며, 은혜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영적 질병입니다.

-관주: 이러한 영적 무지는 요한복음 9장 41절에서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지적과 일치합니다. 자신이 본다고 착각하는 교만이 회개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29장 13절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적 소경됨이 단순히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눈이 멀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적용: 혹시 우리는 주일에 예배당 뜰만 밟고 돌아가는 '눈 먼 종교인'은 아닙니까?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속사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평안하다고 착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구하여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아야 합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간절한 고백이 우리 심령에서 터져 나와야 할 것입니다.

2.  내적 청결의 우선성 (26절 중반절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본문 강해: 주님은 "먼저(proton)" 안을 깨끗이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안(entos)'은 인간의 마음, 의지, 감정의 좌소를 의미합니다. 종교적 행위보다 마음의 동기가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정결례를 통해 닦았으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했습니다. 웨슬리는 이를 두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진리를 강조하며, 진정한 성화는 외부의 수정이 아니라 내부의 갱신에서 시작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죄의 뿌리는 마음에 있습니다. 미움, 시기, 교만, 정욕과 같은 내면의 더러움을 그대로 둔 채 선한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은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깨끗함'은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마음의 할례, 곧 본성적인 죄악의 씻김을 의미합니다.

-관주: 이 가르침은 다윗이 시편 51편 6절에서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라고 고백하며, 10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라고 기도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또한 에스겔 36장 26절은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라고 약속합니다. 이는 인간의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안을 깨끗하게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만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 곧 중생과 성결이 가능함을 증언합니다.

-적용: 우리는 죄의 열매만 따내려 하지 말고, 죄의 뿌리를 뽑아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속 은밀한 곳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의 생각과 동기가 거룩합니까?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의 불로 우리의 속사람이 정결케 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결의 은혜를 갈망하는 자의 태도입니다.

3.  내적 변화의 필연적 결과 (26절 하반절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본문 강해: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는 말씀은 내적 성결이 자연스럽게 외적 거룩함으로 이어진다는 약속이자 원리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행실은 저절로 거룩해집니다. 나무가 좋아야 열매가 좋듯이, 존재의 변화 없이는 행위의 참된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는 믿음이 사랑으로 역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면, 그 사랑은 이웃을 향한 섬김과 헌신, 도덕적인 삶으로 흘러넘치게 됩니다. 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는 율법주의와 달리, 복음은 안에서 밖으로(inside-out) 역사합니다. 안이 깨끗한 사람은 위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삶은 투명하며, 숨길 것이 없기에 겉과 속이 일치하는 성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관주: 누가복음 6장 45절에서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면의 상태가 필연적으로 외부로 표출됨을 확증합니다. 또한 야고보서 4장 8절의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는 권면은 마음의 성결이 선행될 때 손의 깨끗함, 즉 삶의 행위가 정결해짐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한 것도 전인적인 성결의 순서를 시사합니다.

-적용: 당신의 언어와 행동, 그리고 삶의 습관들은 당신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억지로 경건한 척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주님께 온전한 마음을 드리십시오.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당신의 삶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 성화는 개인적 성화의 필연적인 열매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위선을 꾸짖으시며 우리에게 참된 신앙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겉모습을 꾸미는 데 급급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안을 깨끗이 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그분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형식, 오랜 신앙의 연조, 직분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만이 우리의 부패한 마음을 씻어 눈보다 희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 엎드립시다. 우리의 탐욕, 교만, 시기, 그리고 은밀한 죄악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성령의 정결케 하시는 은혜를 구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며, 사모하는 영혼에게 성결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될 것입니다. 안과 겉이 모두 깨끗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에 대한 질문:

1. 바리새인의 '눈 먼' 상태가 현대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는 무엇입니까?

2.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는 명령이 개인의 도덕적 수양이 아닌 '은혜'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내면의 성결이 사회적 책임이나 이웃 사랑(겉의 깨끗함)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을 참되다고 할 수 있습니까?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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