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편 1절 John의 칼럼 - 하나님 없는 마음의 허상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인간은 지혜를 갈망하나 창조주를 부정할 때 가장 깊은 어리석음에 빠진다. 시편 기자가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단순히 지적 능력이 부족한 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이는 도덕적 근원이자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무신론은 지성의 산물이 아니라, 거룩한 통제를 벗어나려는 타락한 의지의 산물이다.

웨슬리는 모든 행위의 근원이 마음이라고 보았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지워버리는 행위는 단순히 이론적 불신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베푸시는 선행적 은총의 빛을 외면하는 것이며, 자신의 부패한 본성을 따르겠다는 위험한 선언과도 같다. 빛이 사라진 마음에 어둠이 깃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삶의 현장에서는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지 않는 '실천적 무신론'의 유혹에 빠지곤 한다.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화려한 종교적 형식이라도 그것은 영혼의 부패를 가리는 수단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종교는 오히려 가증한 행실의 은폐처가 될 뿐이다.

하나님이 배제된 곳에 참된 선은 존재할 수 없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는 성경의 탄식은 인간의 전적 부패를 드러내는 동시에,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만이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치료하고 새롭게 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마음의 어리석음은 개인의 영혼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부패로 이어진다. 행실이 가증해지고 선이 사라진 사회에는 불의와 고통만이 가득하게 된다. 웨슬리가 개인의 성결을 넘어 사회 성결을 그토록 강조했던 이유도 바로 이 마음의 부패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혜는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다시 왕으로 모셔 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성도는 자신의 부패함을 직시하고, 마음을 깨끗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없다' 하던 어리석은 마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거룩한 증거와 선한 행실로 변화될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시편 14편 1절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가 지적인 무지보다 도덕적, 의지적 선택에 가까운 이유는 무엇인가?

2. 웨슬리가 경계한 '실천적 무신론'이 오늘날 현대 성도들의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3.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는 절망적인 선언 속에서 성도가 발견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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