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4편 14절 John의 강해 -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

제목: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
구절: 시편 34편 14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서론: 다윗은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 쫓겨난 후,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이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14절은 단순한 도덕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마땅히 걸어야 할 삶의 방향을 세 가지 명령으로 제시합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고, 화평을 추구하라는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날마다 새롭게 울려 퍼집니다.

1. 악을 버리라 (14절 상반절)

강해: 히브리어 원문 סוּר מֵרָע (수르 메라, Sûr mērāʿ)에서 סוּר (수르)는 "돌이키다, 방향을 전환하다, 떠나다"는 뜻의 칼(Qal) 명령형 동사입니다(BDB 693).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의지적이고 능동적인 방향 전환을 뜻합니다. מֵרָע (메라)는 전치사 מִן(min, ~로부터)과 רַע (라, evil)의 결합으로 "악으로부터"를 의미합니다. 웨슬리는 이 구절에 대해 "모든 종류의 죄로부터 떠나라"고 간명하게 주석하며, 악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첫 번째 증거임을 강조했습니다.

해설: 잠언 8장 13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또한 욥기 28장 28절은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고 가르칩니다. 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가까이 붙어 있어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것은 악한 사람들과의 교제, 악한 말과 행동, 악의 모든 모습을 포함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이것을 미워하고 떠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신약에서도 로마서 12장 9절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권면하며, 디모데후서 2장 19절은 "불의를 버리라"고 선포합니다.

적용: 성도의 삶에서 악을 버리는 것은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웨슬리가 가르친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은 우리가 악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먼저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오늘 나의 삶에서 아직 버리지 못한 악의 습관, 말의 죄, 관계의 오염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2. 선을 행하라 (14절 중반절)

강해: 히브리어 וַעֲשֵׂה־טוֹב (와아세-토브, waʿăśēh-ṭôb)에서 עָשָׂה (아사)는 "행하다, 만들다, 실행하다"는 칼(Qal) 명령형으로(BDB 793), 단순한 의지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를 요구합니다. טוֹב (토브)는 "선한, 아름다운, 유익한"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포괄적 선(善) 개념으로, 윤리적 선함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 모두를 포함합니다(BDB 373). 웨슬리는 "선을 행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좋은 일을 기꺼이 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한다"고 주석했습니다.

해설: 악을 떠나는 것(소극적 명령)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선을 행하는 것(적극적 명령)이 뒤따라야 합니다. 매튜 헨리는 이에 대해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유익함을 위해 애써야 하며, 무언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편 37편 27절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고 같은 어조로 권면하며, 이사야 1장 16-17절은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라"고 명령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은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가르칩니다.

적용: 웨슬리의 신학에서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는 죄로부터의 해방만이 아니라 사랑의 완전한 충만, 즉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삶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선을 행할 기회는 넘쳐납니다. 이웃의 고통에 응답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섬기며, 일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흘려보내는 것이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살아있는 응답입니다.

3. 화평을 찾아 따르라 (14절 하반절)

강해: 히브리어 בַּקֵּשׁ שָׁלוֹם וְרָדְפֵהוּ (바케쉬 샬롬 베라드페후, baqqēš šālôm wərādəp̄ēhû)에서 핵심 동사는 두 개입니다. בַּקֵּשׁ (바카쉬, to seek)는 피엘(Piel) 명령형으로 강렬한 탐구와 열망을 뜻하며(BDB 134), רָדַף (라다프, to pursue)는 "쫓아가다, 추격하다"는 의미의 칼(Qal) 명령형입니다(BDB 922). שָׁלוֹם (샬롬)은 단순한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온전함·충만·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포괄하는 히브리적 평화 개념입니다(BDB 1022). 웨슬리는 "화평이 도망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것을 열심히 쫓으라"고 권면하며, 화평을 위해 자기 자신을 크게 내려놓을 각오가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해설: 신약 성경은 이 구절을 베드로전서 3장 11절에서 직접 인용하여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선언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고 강조하며, 야고보서 3장 17-18절은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하고... 화평으로 심는 자들은 화평으로 거둔다"고 가르칩니다.

적용: 화평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달려가야 할 목표입니다. 교회 안의 갈등, 가정 안의 다툼, 이웃과의 불화 앞에서 우리는 종종 화평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샬롬을 맛본 성도는 그 화평을 붙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습니다. 웨슬리가 감리교 운동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화평의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증명됩니다.

맺는말[Conclusion]:

시편 34편 14절의 세 명령, 즉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고, 화평을 따르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총체적 청사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적 노력만으로 성취될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행적 은총으로 우리를 먼저 깨우치시고, 부르시며, 악에서 돌이킬 힘을 베푸십니다. 그 은혜에 응답하는 것이 바로 악을 버리는 결단입니다.

그러나 결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믿음이 삶의 열매로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웨슬리가 평생 가르쳤듯이, 온전한 성화의 삶은 죄로부터 돌이킨 자리에 사랑과 선행이 가득 차오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선을 행할 기회는 날마다 주어집니다. 그 기회를 붙잡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화평을 쫓는 삶은 희생과 겸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화평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샬롬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평을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화평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악을 떠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뒤쫓는 성도의 삶이 곧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증거입니다.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는 악의 뿌리를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고, 선을 행할 능력을 날마다 새롭게 부어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이 땅 위에 주님의 샬롬이 충만하게 임하시어, 저희가 화평케 하는 자로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는 오늘 내 삶에서 어떤 구체적인 '악'을 버려야 하며, 그것을 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선을 행하는 것이 단순한 친절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이며, 웨슬리의 온전한 성화 신학과 어떻게 연결됩니까?

3. 화평을 '구하는 것'과 화평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이며, 현재 내 공동체 안에서 화평을 적극적으로 쫓아야 할 관계는 어디입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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