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16절 John의 강해 - 빛으로 살라

제목: 빛으로 살라
구절: 마태복음 5장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서론: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성도를 향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권면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성도는 이미 빛입니다. 문제는 그 빛을 숨기느냐, 드러내느냐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삶으로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1. (5:16상) - 빛은 드러나야 한다

강해: 헬라어 원문(NA28)은 "οὕτως λαμψάτω τὸ φῶς ὑμῶν ἔμπροσθεν τῶν ἀνθρώπων"(후토스 람프사토 토 포스 휘몬 엠프로스텐 톤 안트로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핵심 단어 λαμψάτω(람프사토)는 '빛나게 하라'는 3인칭 단수 명령형(aorist imperative)으로, 단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결연한 행동을 촉구하는 표현입니다. φῶς(포스)는 단순한 광원(光源)이 아니라 '지식', '구원', '영광'을 함축하는 단어로, BDAG 사전은 이를 "빛, 조명, 공공의 가시성(public visibility)"으로 정의합니다. ἔμπροσθεν(엠프로스텐), 즉 '앞에'라는 말은 숨김없이 공개적으로 드러내라는 뜻입니다. 웨슬리(John Wesley)는 그의 『설명 주석』(Explanatory Notes)에서 "하나님께서 이 빛을 주신 바로 그 목적은 빛나게 하기 위함이었다(Nay, the very design of God in giving you this light was, that it might shine)"라고 밝힙니다. 빛은 그 본성상 숨길 수 없습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자가 없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된 성도의 삶은 세상 앞에 드러나야 합니다.

해설: 예수님은 이 말씀 바로 앞 15절에서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5)고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살아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빌 2:15)고 권면합니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고 가르칩니다. 빛은 스스로를 위해 빛나지 않습니다. 주변을 밝히기 위해 빛납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받은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의 문을 여는 통로입니다.

적용: 오늘 한 주간, 내 삶의 어느 자리에서 빛을 숨기고 있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신앙을 감추고 살아왔다면, 그것은 말 아래 감춰진 등불입니다. 말씀이 그 빛을 꺼내어 등경 위에 올려놓으라고 명하십니다. 두렵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2. (5:16중) - 착한 행실이 빛의 내용이다

강해: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에서 καλὰ ἔργα(칼라 에르가)는 단순히 선한 행위를 넘어 '아름답고 고귀한 행실'을 의미합니다. καλός(칼로스)는 BDAG에 따르면 외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아름다운, 훌륭한, 가치 있는'이라는 뜻으로, 단순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소극적 선이 아니라 세상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적극적 선을 가리킵니다. ἔργα(에르가)는 복수형으로서, 한 번의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지속적인 삶의 패턴을 뜻합니다. 웨슬리는 이 구절에 대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감동받을 것이다(they may be moved to love and serve God likewise)"라고 해석합니다. 웨슬리 신학에서 완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의 열매는 바로 이 칼라 에르가, 즉 사랑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행실로 드러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됩니다(약 2:17).

해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선언합니다. 예수님도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20)라고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를 향해 로마 사회가 감탄한 것은 그들의 정교한 신학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병자를 돌보고, 가난한 자를 먹이고, 원수를 용서하는 그 삶이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웨슬리도 18세기 영국에서 고아원을 세우고, 광부들을 위한 학교를 열고, 감옥을 방문하며 복음을 행동으로 살아냈습니다. 그것이 곧 λαμψάτω, 즉 빛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은 복음의 증거입니다.

예화: 어느 시골 마을에 오래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성도 한 분이 홀로 사는 노인들을 해마다 겨울이면 찾아가 연탄을 나르고, 밥을 지어 드렸습니다. 그분은 말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나는 예수 믿습니다"라고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 겨울, 그 노인 중 한 분이 "당신 같은 사람이 다니는 교회라면 나도 가보고 싶소"라고 말했고, 그 주일 처음으로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말보다 먼저 삶이 증거가 되었습니다. 칼라 에르가, 아름다운 행실은 가장 강력한 전도입니다.

적용: 이번 주, 내 주변에서 작은 선을 베풀 수 있는 한 가지 구체적인 행동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의 쓰레기를 함께 버려 주는 것, 힘든 동료에게 진심 어린 격려의 말 한마디, 교회 안에서 소외된 성도 곁에 먼저 다가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칼라 에르가입니다. 큰 영웅이 되려 하지 말고, 오늘 내 자리에서 아름다운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3. (5:16하) - 빛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강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에서 δοξάσωσιν(독사소신)은 '영광을 돌리다, 찬양하다'라는 뜻의 가정법 부정과거(aorist subjunctive)로, 이 행위가 최종 목적임을 나타냅니다. δόξα(독사)는 구약 히브리어 כָּבוֹד(카보드, "무게, 영광, 존귀")에 해당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존귀하심을 드러내는 개념입니다. 빛을 비추는 목적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우리가 행하는 선한 일들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웨슬리가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을 강조한 이유입니다. 기도, 말씀, 성례, 선행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입니다. 내가 비추는 빛이 나를 향한 칭찬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빛을 잘못 쓴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선한 행실은 "아버지께 영광"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해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나는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노라"(요 8:50)고 하시면서, 모든 사역이 아버지를 향한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약속합니다. 성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그 삶이 하나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습니다. 태양의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반사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세상으로 반사하는 자들입니다.

적용: 내가 하는 봉사, 헌신, 선행의 동기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인지를 솔직하게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지 말라(마 6:1)고 하십니다. 동기가 순수할 때 우리의 빛은 진정한 빛이 됩니다. 오늘부터 모든 행동 앞에 이 질문을 붙이십시오.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맺는말[Conclusion]: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우리는 어둠이 아니라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빛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고 명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 아닙니다. 빛이 비추지 않으면 어둠이 남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어둠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웨슬리는 "성경이 아는 종교는 고독하고 사적인 종교가 아니다(The Bible knows nothing of solitary religion)"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 가운데서 아름다운 행실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칼라 에르가, 그 아름다운 삶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빛의 최종 목적지는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이웃을 섬길 때, 진심으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달입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결단하십시오. 감춰두었던 빛을 꺼내어 사람들 앞에 비추십시오. 그것이 산상수훈의 명령이요, 웨슬리가 걸어간 삶이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빛으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일상 속 작은 행실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빛이 되어 이웃의 마음에 닿게 하시고, 오직 아버지의 이름만이 높여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떤 자리에서 빛을 감추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내가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칼라 에르가(아름다운 행실)'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3. 나의 선한 행동의 동기는 사람의 인정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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