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 John의 강해 - 거룩함으로 부르심

제목: 거룩함으로 부르심
구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서론: 오늘 우리는 삶의 방향을 묻는 말씀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선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부정함이 아니라 거룩함입니다. 이 한 절의 말씀이 우리 삶 전체의 나침반이 됩니다.

1. (4:7상)  -  부르심의 출발점: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강해: 헬라어 원문에서 "부정하게"는 ἀκαθαρσία(아카타르시아)로, 이 단어는 단순한 도덕적 불결함을 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없는 상태, 즉 거룩한 임재에 합당하지 않은 삶 전체를 가리킵니다. BDB(구약)에서 이에 상응하는 히브리어 개념은 טֻמְאָה(투마아)로, 레위기의 의식적 부정함을 뜻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이 편지에서 당시 이방 문화의 성적 방종과 우상 숭배가 성도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음을 직시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러한 삶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선포합니다.

해설: 하나님의 부르심은 반드시 그 부르심의 반대 방향을 전제합니다. 부정함에서 건져내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레위기 11장 44절은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 역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선포합니다. 웨슬리는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단순히 지옥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구원이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의 적극적인 초대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부정함을 피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의 일부입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 각종 콘텐츠, 세속 문화의 물결 속에서 날마다 부정함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무심코 클릭하는 영상 속에서, 무너져 가는 관계들 속에서 부정함은 조용히 우리 삶에 스며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이러한 흐름에 맞서, 날마다 "나는 부정함이 아닌 거룩함을 향해 부름받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충돌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 (4:7중)  -  부르심의 내용: "거룩하게 하심이니"

강해: "거룩하게"는 헬라어 ἁγιασμός(하기아스모스)로, 이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진행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즉 성화(聖化)는 단번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웨슬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 주석에서 "Sanctification  -  Entire holiness of heart and life", 즉 "성화란 마음과 삶 전체의 완전한 거룩함"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이것이 웨슬리 신학의 완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개념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의롭다 하시는 것(칭의)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의 내면까지 거룩하게 변화시키시는(성화)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해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이 성화의 완성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히브리서 12장 14절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선포합니다. 거룩함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뵐 수 있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웨슬리는 이 성화의 역사가 성령 하나님의 사역임을 강조하였는데, 4장 8절에서 바울도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언급하며 성화와 성령의 관계를 명확히 합니다.

예화: 19세기 영국의 한 도공(陶工)이 있었습니다. 그는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흙은 내 손에서 빚어져야 비로소 쓰임을 받는다. 불을 지나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 어느 날 그의 제자가 물었습니다. "왜 같은 흙인데 어떤 그릇은 왕의 식탁에 오르고, 어떤 것은 쓰레기통이 됩니까?" 도공이 답했습니다. "손에 맡기느냐 맡기지 않느냐의 차이라네." 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우리는 부정한 흙덩이에서 거룩한 그릇으로 빚어집니다. 우리의 역할은 저항하지 않는 것, 그분의 손에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적용: 성화는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으로 시작되고, 성령의 역사로 이어지며, 우리의 믿음의 반응으로 열매 맺습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은 바로 이 성화의 수단(Means of Grace)입니다. 진주충만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도 성화의 수단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 작은 발걸음이 바로 거룩함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3. (4:7하)  -  부르심의 주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강해: 이 구절의 헬라어 동사 "부르심은" ἐκάλεσεν(에칼레센)은 단순 과거 시제(aorist)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역사 안에서 단회적으로, 그러나 완전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진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웨슬리 신학에서 이 부르심은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과 직결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의 공로나 선택 이전에, 먼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십니다. 부르심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해설: 로마서 8장 30절은 부르심의 구원론적 연쇄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부르심은 칭의와 영화(榮化)로 이어지는 구원의 길 전체를 포함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을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신" 것으로 고백합니다. 부르심은 내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웨슬리는 이 은총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가 응답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적용: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성도는 담대히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부르셨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성도는 교만할 수 없고, 이 사실을 아는 성도는 낙심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부르신 분이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부르심 위에 굳게 서십시오.

맺는말[Conclusion]:

하나님은 우리를 부정함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거룩함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단순하고도 선명한 진리가 오늘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이방 문화의 파도 속에서도 거룩한 삶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 부르심을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웨슬리가 강조한 완전한 성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 예배 자리에서, 오늘 저녁 가정에서, 내일 직장의 자리에서, 우리는 날마다 거룩함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때로 느리고 힘겹더라도,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은 약속합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나는 부정함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이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방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심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오늘도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기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시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부정함이 아닌 거룩함으로 부르신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이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하나님의 부르심이 "거룩하게 하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일상에서 부정함에 타협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웨슬리가 말한 "성화의 수단(Means of Grace)" - 말씀, 기도, 예배, 교제 - 을 나는 얼마나 규칙적으로 실천하고 있습니까?

3.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이루실 것이다"(살전 5:24)는 약속이 당신의 신앙생활에서 실제로 어떤 힘이 되고 있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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