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일서 3장 18절 John의 강해 - 행함으로 사랑하라
제목: 행함으로 사랑하라
구절: 요한일서 3장 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서론: 사랑한다는 말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삶에서 실제로 드러날 때, 비로소 그것은 참된 사랑이 됩니다. 사도 요한은 생애의 마지막에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한 마디를 반복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 우리는 그 사랑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요한일서 3장 18절을 통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의 한계 (18절 상반절)
강해: 본문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라"고 선언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λόγῳ(로고)는 '말', γλώσσῃ(글로세)는 '혀'로, 둘 다 언어적 표현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이 두 단어를 병렬로 배치하여 말뿐인 사랑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강조합니다. 웨슬리(Wesley)는 이 구절에 대해 "말로만 - 오직 말뿐이다(Not in word - Only)"라고 주석하면서,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해설: 야고보서 2장 15-16절은 이와 동일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사랑의 말이 아무리 따뜻해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말에 불과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주님께서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입술의 신앙과 삶의 신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사랑은 공허한 소리에 머물고 맙니다.
적용: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랑한다", "기도하겠다", "도와주겠다"는 말을 쉽게 내뱉습니까? 이번 한 주, 우리가 습관적으로 내뱉은 사랑의 말들을 돌아보십시오. 그 말 뒤에 실제로 따른 행동이 있었는지 살펴보십시오. 말만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에 오래 남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반드시 그 발걸음이 뒤따라야 합니다.
2.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의 능력 (18절 하반절)
강해: 본문의 대안은 명확합니다.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ἔργῳ(에르고)는 실천적 행위를, ἀληθείᾳ(알레테이아)는 진리와 성실함을 뜻합니다. 웨슬리는 "'행함으로' - 행동으로: 빈 고백의 혀가 아니라 진실함으로(But in deed - In action: not in tongue by empty professions, but in truth)"라고 주석하며, 참된 사랑은 반드시 실제적인 행동과 진실한 동기로 이루어진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웨슬리 자신도 평생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감옥과 광산을 직접 방문하며 이 사랑을 몸으로 살아냈습니다.
해설: 요한일서 3장 16-17절은 이 행함의 사랑에 대한 구체적 기초를 제시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행함'과 '진실함'의 가장 완전한 모형입니다. 그분은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화: 19세기 영국의 한 의사 토머스 바나도(Thomas Barnardo)는 어느 겨울 밤, 거리에서 굶주리고 떨고 있는 열 살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런던에만 수천 명의 고아가 거리를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나도는 즉시 고아원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문을 닫을 이유가 없다(No Destitute Child Ever Refused Admission)"는 원칙을 세우고 평생 6만 명이 넘는 아이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는 수없이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날마다 행동으로 사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이 말한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이었습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습니까? 말로만 "잘 되길 바란다"고 지나치지 마십시오. 전화 한 통, 밥 한 끼, 따뜻한 손길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가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의 사랑이 발과 손과 지갑을 통해 실현될 때, 세상은 그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3. 진실한 사랑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확신 (19절)
강해: 18절의 실천적 사랑은 19절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은 단순히 도덕적 의무를 넘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확신(assurance)의 근거가 됩니다. 웨슬리는 "이로써 우리가 알게 된다 - 우리는 이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사랑에 의해 더 확실한 증거를 갖는다(And hereby we know - We have a farther proof by this real, operative love)"고 주석하였습니다.
해설: 웨슬리 신학의 핵심인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선언합니다. 행함의 사랑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고 증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부어 주신 사랑이 행동으로 흘러나올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적용: 혹시 지금 신앙의 확신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내가 과연 하나님의 자녀인지 의심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한 가지 작은 사랑의 행동을 실천해 보십시오. 그 행함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든든하게 세워 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실한 사랑의 실천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은혜의 증거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사도 요한은 90세가 넘은 노년에도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한 마디만 반복했다고 전해집니다.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제자들이 "왜 항상 같은 말씀만 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그것 하나만 지켜도 충분하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3장 18절은 바로 그 한 마디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사랑은 말과 혀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반드시 행함과 진실함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SNS에는 사랑의 고백이 가득하고, 교회에도 사랑의 말들이 풍성합니다. 그러나 정작 외로운 이웃, 아픈 형제자매, 굶주린 영혼들을 향한 실제적인 손길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말씀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몸소 이 땅에 오셔서, 직접 죄인들을 만지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순간부터, 우리의 사랑이 입술을 넘어 손과 발로 흘러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작은 실천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된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웁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우리 진주충만교회 성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가 말뿐인 사랑으로 살아온 시간들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행함과 진실함으로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는 평소에 '말로만' 하는 사랑과 '행함으로' 하는 사랑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구체적인 사례를 떠올려 보십시오.
2. 웨슬리가 강조한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사랑(real, operative love)'이란 오늘 우리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3. 행함의 사랑이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확신을 가져다 준다는 19절의 말씀은, 구원의 확신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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