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5편 20절 강해 - 주님이 지키시는 자

제목: 주님이 지키시는 자
구절: 시편 145편 20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서론: 찬양 시편의 마지막 편인 시편 145편은 다윗이 왕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입니다. 그 절정에 오늘 본문 20절이 있습니다. 세상은 때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악인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주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반드시 보호하시며, 악인은 반드시 멸하신다고.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심판, 그리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시편 145:20上)

강해: 히브리어 본문에서 "보호하시고"는 שׁוֹמֵר(쇼메르)로, BDB 사전에 따르면 '지키다(keep)', '파수꾼으로서 보호하다(watch over as a guard)'는 뜻입니다. 이는 수동적 방관이 아니라 능동적·적극적 보호입니다. 또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אֹהֲבָיו(오하바이우), 곧 '그를 사랑하는 모든 자'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적 헌신 관계를 의미하는 אָהַב(아하브)입니다. LXX(70인역)는 이를 φυλάσσει(퓔라쎄이)로 번역하는데, 이 헬라어는 군인이 초소를 지키듯 철저히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웨슬리는 이 구절에 대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과 거룩한 길을 사랑하도록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그 사랑 안에 있는 자를 악인의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신다고 해설하였습니다. 즉 사랑하는 자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보호는 웨슬리 신학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기 훨씬 전부터, 먼저 우리를 향해 역사하시며 보호하십니다.

해설: 시편 91편 11절은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고 선언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 역시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고 확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를 향한 주님의 보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언약적 사랑에 근거합니다.

적용: 오늘 우리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수많은 위협과 두려움을 만날 때, 주님이 우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보호의 조건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날마다 새롭게 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그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보호의 방패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편 145:20上, 요한복음 14:15)

강해: 본문의 핵심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אָהַב(아하브)는 구약 신학에서 단순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신명기 6장 5절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이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삶 전체를 드리는 헌신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습니다. 헬라어 ἀγαπάω(아가파오)는 조건 없는 희생적 사랑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순종의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야고보서 2장 17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이웃을 향한 섬김, 정의와 긍휼의 실천으로 연결됩니다. 웨슬리가 강조한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 — 개인의 신앙이 사회적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 이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해설: 시편 31편 23절은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충성된 자를 보호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하여,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받은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며, 그 응답은 예배와 기도, 그리고 이웃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예화: 영국의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집회에서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성령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전 생애에 걸쳐 40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말을 타고 이동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웨슬리는 "세계가 나의 교구(The world is my parish)"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의 삶은 이처럼 자신을 넘어 세상을 향해 열립니다. 하나님 사랑은 결코 내면에 갇히지 않습니다.

적용: 오늘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일 예배 참석으로 그칩니까, 아니면 평일의 삶에서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이웃을 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성도라면, 그 사랑이 가정과 직장과 이웃에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하루 한 사람에게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섬김 하나를 실천해 보십시오.

3. 하나님은 악인을 멸하십니다 (시편 145:20下)

강해: 본문 후반부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의 히브리어는 וְכָל-רְשָׁעִים יַשְׁמִיד(베콜-레샤임 야쉬미드)입니다. רָשָׁע(라샤)는 '악인, 불의한 자'를 의미하며, שָׁמַד(샤마드)는 '완전히 파멸시키다(destroy utterly)'는 강한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BDB 사전에서 '근절하다(exterminate)'로 설명됩니다. 이 선언은 두려움을 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가 반드시 관철된다는 신앙적 확신의 표현입니다. 스펄전(C.H. Spurgeon)은 악함이란 모든 거룩한 존재에 대한 모욕이므로, 악 안에 머물기로 결정한 자들은 반드시 제거된다고 했습니다. 마치 위생법이 전염병 균을 제거하듯,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는 모든 악을 종국에 소멸시킵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이 먼저 모든 사람에게 선행적으로 미치지만(선행적 은총), 그 은총을 끝내 거부하고 악 가운데 머무는 자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공포의 신학이 아니라 정의의 신학입니다.

해설: 시편 37편 9절은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바라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라고 선포합니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9절은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고 확언합니다. 악인의 멸망은 보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불가피한 정의의 실현입니다.

적용: 우리는 불의가 판치는 세상을 보며 때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성도는 세상의 불의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신뢰하며 선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우리 자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혹시 내 삶 어딘가에 악인의 길을 걷는 부분이 없는지 주님 앞에 정직하게 점검하고, 매일 회개와 갱신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십시오.

맺는말[Conclusion]:

오늘 시편 145편 20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진리를 동시에 선포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향한 철저한 보호이며, 다른 하나는 악인을 향한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이 두 진리는 서로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같은 하나님의 성품 — 사랑과 거룩함 — 에서 흘러나오는 두 줄기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보호하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길은 세상이 보기에 좁고 불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는 전능하신 주님의 שׁוֹמֵר(쇼메르), 파수꾼의 눈이 항상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 보호는 상황이 바뀌어도, 환경이 어려워도 변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0장이 확인해 주듯, 아무도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 각자의 삶에 살아있는 닻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우리 존재의 목적입니다. 웨슬리가 가르친 대로, 그 사랑은 예배당을 넘어 거리로, 가정으로, 직장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믿음을 붙들고, 오늘 한 걸음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권면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시고 파수꾼처럼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며, 그 사랑이 삶의 모든 자리에서 드러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악한 것에서 돌이키고 의의 길을 걸으며 날마다 주님 안에서 보호받는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예배 참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면, 나의 일상에서 그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2. 불의한 세상을 보며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한 적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그 의심에 어떤 답을 주고 있습니까?

3. 웨슬리가 강조한 '사회적 성결'의 관점에서, 우리 교회 공동체가 지역 사회를 향해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의 행동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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