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4장 11절 John의 강해 - "아사왕의 기도"

제목: 아사왕의 기도
구절: 역대하 14장 11절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뢰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서론: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을 맞이합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벽 앞에 서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유다 왕 아사가 백만 대군 앞에서 드린 단 한 마디의 기도를 통해, 인간의 연약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만나는지 배우게 됩니다. 이 짧은 기도 안에 신앙의 본질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습니다 (11절 상반절)

역대하 14:11a -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강해: 히브리어 원문에서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는 '아인 이므카 לְעָזוֹר (레아조르)' 곧 '돕다'는 동사의 부정사 절대형으로, '오직 주만이'라는 의미의 강조 구조를 이룹니다. 히브리어 '아자르 עָזַר (아자르)'는 BDB 어휘 사전에서 "rescue, help"의 의미로, 단순한 조력이 아닌 결정적 구원의 도움을 가리킵니다. 아사 왕은 에티오피아 군대 백만 명, 전차 삼백 대(9절)와 맞서야 했습니다. 그의 군대는 오십팔만 명(8절), 수적으로도 열세였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병사의 수를 헤아리지 않고 하나님의 크심을 헤아렸습니다.

해설: 사무엘상 14장 6절에서 요나단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고백하였듯, 아사는 바로 그 믿음의 전통 위에 섰습니다. 시편 33편 16절은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웨슬리(John Wesley)는 역대하 14장 11절 주석에서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아사의 기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대한 고백으로, 사람이 강하든 약하든 수의 많고 적음이 하나님의 도우심에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음을 선포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를 통해서도, 약한 자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오히려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밝게 빛납니다.

적용: 지금 여러분 앞에는 어떤 '백만 대군'이 서 있습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경제적 위기입니까,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의 상처입니까? 아사처럼 먼저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이시면 충분합니다." 사람이 많아야, 조건이 갖춰져야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에서도 일하십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11절 중반절)

역대하 14:11b -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뢰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강해: '의뢰하오며'는 히브리어 '샤안 שָׁעַן (샤안)'으로, BDB 어휘 사전은 이를 "lean upon, support oneself"로 정의합니다. 이 단어는 사무엘하 1장 6절에서 사울 왕이 부상당한 채 창에 기대어 쓰러져 가는 장면에 사용된 바로 그 동사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성경 강해자 알렉산더 맥라렌(Alexander MacLaren)은 이 점에 주목하여, "아사는 상처 입은 사울이 창에 온몸을 기댔듯 하나님께 전 존재를 기대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의탁입니다. 가볍게 손을 얹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무게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에서 '이름'은 히브리어 '쉠 שֵׁם (쉠)'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언약 전체를 포괄합니다.

해설: 이사야 40장 29절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라고 약속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전합니다. 우리가 강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의 힘을 믿기 쉽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무너졌다고 느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됩니다. 웨슬리가 말하는 선행적 은총(선행적 은총, Prevenient Grace)은 바로 이 자리에서 역사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비울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 빈 자리를 가득 채우십니다.

예화: 1780년, 존 웨슬리는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영국 전역을 말을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한 제자가 "어떻게 그 나이에 그토록 지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웨슬리는 조용히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두 시간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나의 힘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웨슬리의 삶은 '샤안', 곧 하나님께 온몸을 기대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설교단에서도, 말 위에서도, 쓰러져 가는 병상에서도 언제나 주님의 이름에 기대어 서 있었습니다.

적용: 오늘 여러분은 어디에 기대어 있습니까? 자신의 경험입니까, 재정입니까, 사람의 도움입니까? 아사처럼 담대하게 선언하십시오. "주를 의뢰합니다." 그리고 나서 일어나 나아가십시오. 의지함은 소극적 굴복이 아니라 적극적 전진입니다. 믿음으로 발을 내딛는 자에게 길이 열립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이 걸린 싸움입니다 (11절 하반절)

역대하 14:11c -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강해: 아사는 마지막으로 놀라운 신학적 고백을 합니다.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것은 단순한 승리 요청이 아닙니다. 아사는 이 전쟁이 자신과 유다만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걸린 싸움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야찰 יָצַל (야찰)'의 관련 어근인 '아나쉬 אֱנוֹשׁ (에노쉬)'는 "필멸의 인간, 연약한 인간"을 뜻합니다. 즉 아사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기는 일이 없게 하소서." 하나님의 영예를 앞에 세운 기도입니다.

해설: 시편 79편 9절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웨슬리의 주석에서 이 구절을 두고 "만약 적이 우리를 이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이기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라고 해설합니다. 신약의 빌립보서 4장 13절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항상 하나님의 이름이 걸린 싸움입니다. 우리가 넘어지면 안 되는 이유는 우리의 자존심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에서 싸우고 있는 그 싸움이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이름과 함께 걸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 싸움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이름을 지키십니다. 아사의 기도 직후 12절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에티오피아 사람을 아사와 유다 앞에서 치시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기도가 끝나자 하나님이 일어나셨습니다.

맺는말[Conclusion]:

아사의 기도는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기도 안에 신앙의 세 가지 본질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고백입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의 능력은 그 상황보다 크십니다. 문제의 크기가 하나님의 손을 묶지 못합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마비시키려 할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는 것이 첫 번째 믿음의 발걸음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온전히 기대는 의탁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주를 의뢰하오며." 히브리어 '샤안'이 보여주듯, 이것은 상처 입은 사람이 마지막 기댈 곳에 전 체중을 싣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의 경험이나 계획, 능력을 의지하는 것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 기대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선행적 은총은 이미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승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영광받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리에서 아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사가 백만 대군 앞에서도 오직 주를 바라보았듯, 우리도 삶의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주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주의 이름이 높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아사 왕은 병력을 정비한 뒤에야 기도하였습니다(9-11절). 우리 삶에서 '먼저 준비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먼저 맡기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2. '샤안(שָׁעַן)'은 온몸을 기대는 전적인 의탁입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께 가볍게 손을 얹는 수준입니까, 아니면 전 존재를 기대는 수준입니까?

3. 아사는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자신의 싸움을 하나님의 이름과 연결하였습니다. 오늘 나의 삶의 어려움을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하여 기도한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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