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장 27절 John의 강해 - 한 번 죽는 것

제목: 한 번 죽는 것
구절: 히브리서 9장 27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서론: 우리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외면하고 싶어하지만, 성경은 이 엄연한 진실을 정면으로 선언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말씀은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우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1. 죽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약속입니다 (히 9:27a)

강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라는 말씀에서 '정해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ἀπόκειται (아포케이타이)입니다. 이 단어는 '저장되어 있다, 예비되어 있다, 하나님의 작정으로 확실하게 결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한 번'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ἅπαξ (하팍스)로, '단 한 번, 결코 반복되지 않는, 단호하게 확정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연이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정하신 거룩한 질서 안에 놓여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9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것은 저주이기에 앞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선언입니다. 전도서 9장 5절도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라고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 진리를 선포하는 맥락은,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희생이 얼마나 결정적이고 완전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단 한 번 죽듯, 그리스도도 단 한 번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해설: 욥기 14장 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옵거든." 욥은 고통 가운데서 탄식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날수를 정하셨음을 인정합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 전체에게 공통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작동하는 질서입니다.

적용: 오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 사실을 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으로 오늘을 가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시편 90편 12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죽음을 의식하는 사람이 가장 오늘에 충실합니다.

2.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히 9:27b)

강해: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말씀에서 '심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κρίσις (크리시스)입니다. 이 단어는 '구분하다, 판결하다, 결정하다'는 뜻의 κρίνω(크리노)에서 유래하였으며,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에 근거한 최종 판결을 의미합니다. 웨슬리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주석하였습니다. "After this, the judgment - Of the great day. At the moment of death every man's final state is determined. But there is not a word in scripture of a particular judgment immediately after death(이 이후에는 큰 날의 심판이 있다. 죽음의 순간에 모든 사람의 최종 상태가 결정된다. 그러나 성경에는 죽은 직후에 즉각적인 개별 심판이 있다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 웨슬리는 죽음과 동시에 최종 상태가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성경 외의 교리적 추측을 경계하는 신중한 태도를 취합니다. 이 심판은 요한계시록 20장 11절의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며, 고린도후서 5장 10절의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와도 일치합니다.

해설: 히브리서 4장 13절은 말씀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 투명하게 열려 있습니다. 에클레시아스테스(전도서) 12장 14절도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선언합니다. 심판은 두렵지만, 동시에 공의의 완성입니다.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고통당한 이들, 불의 앞에 좌절했던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온전한 정의가 실현되는 날입니다.

예화: 19세기 영국의 한 판사가 임종 직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평생 법정에서 수많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 자신이 가장 공정한 재판장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그 재판정에서 내 변호인이 필요합니다." 그는 침대 머리에 성경을 펼쳐 놓고 요한일서 2장 1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죽음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압니다. 그러나 심판 앞에서도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언자가 계십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심판은 성도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일깨우는 거룩한 동기입니다. 웨슬리는 성도의 거룩한 삶이 단지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先行的 恩寵)에 응답하는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심판을 기억하는 성도는 오늘 은혜 안에서 더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3.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죽음이 심판의 두려움을 이깁니다 (히 9:28)

강해: 27절의 진리는 28절에서 완성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단번에'는 다시 ἅπαξ(하팍스)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듯, 그리스도도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한 번은 모든 인류를 위한 완전한 속죄였습니다. '담당하시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ἀνενεγκεῖν (아네넹케인)은 이사야 53장 12절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와 정확히 대응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으신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해설: 로마서 8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심판은 정죄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도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선언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성도에게 심판은 두려움의 자리가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웨슬리가 강조했던 완전한 성화(完全한 聖化)의 목표는 바로 이 날을 향한 준비된 삶,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삶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죽음도,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단 한 번 죽으셨고, 그 죽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의 말씀처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위해 심판을 이기셨습니다. 오늘 이 은혜를 붙드십시오.

맺는말[Conclusion]: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을 선언합니다. 한 번의 죽음과, 그 이후의 심판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경고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인생을 향해 말씀하시는 가장 진지한 초청입니다. 죽음을 알고 심판을 아는 사람만이 오늘 하루를 진정한 의미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의 현실은 우리를 허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붙들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7절의 선언은 28절에서 복음의 빛으로 전환됩니다. 우리를 위해 단 한 번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으며, 다시 오실 때에는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오십니다. 요한 웨슬리가 1738년 알더스게이트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한 것도, 바로 이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나는 믿는다." 이 믿음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영원을 향한 하나님의 작정 안에 놓여 있습니다. 죽음도, 심판도, 이 모든 것이 그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 복음의 확신으로 오늘 하루를 거룩하게, 두려움 없이,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의 날들이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음을 알기에, 오늘 더욱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심판이 이미 이겨졌음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죽음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태도와 우선순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2. 웨슬리는 "죽음의 순간에 모든 사람의 최종 상태가 결정된다"고 주석했는데, 이 말은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3.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죽음(ἅπαξ, 하팍스)이 나의 삶에 실질적인 소망과 평안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방해하고 있습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