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브리서 10장 24절 John의 강해 -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제목: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구절: 히브리서 10장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론: 수많은 성도들이 주일마다 예배당을 찾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문을 나설 때,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열린 새 길,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선포한 직후, 곧이어 아름다운 명령 하나를 더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 이 한 말씀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1. 서로를 깊이 살펴보십시오 (히 10:24a)
강해: "서로 돌아보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κατανοῶμεν ἀλλήλους(카타노오멘 알렐루스)입니다. κατανοῶμεν(카타노오멘)은 '카타(κατά, 강조 접두어)'와 '노에오(νοέω, 마음으로 생각하다)'의 합성어로, Strong's G2657에 해당하며, BDAG 사전은 이를 "주의를 집중하여 면밀히 관찰하다(to observe attentively, to fix one's eyes and mind upon)"로 정의합니다. 한 번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울여 깊이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ἀλλήλους(알렐루스)는 '서로서로'라는 상호적 의미로, 이 명령이 한 방향이 아닌 공동체 전체에게 함께 주어진 것임을 강조합니다.
해설: 히브리서 3:1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동일한 카타노오멘이, 예수님을 향한 시선에서 이제 서로를 향한 시선으로 확장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목하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0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가르칩니다. 갈라디아서 6:2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명령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초기 감리교 운동에서 '클래스 미팅(Class Meeting)'이라는 소그룹을 만들어, 성도들이 매주 서로의 영적 상태를 깊이 살피고 나누도록 했습니다. 그에게 서로를 살피는 것은 하나의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이었습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깊이 살피고 있습니까? 스마트폰으로 서로의 사진을 훑어보는 것이 카타노오멘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옆에 앉은 성도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기도 제목이 있으신가요?"라고 먼저 물어보십시오. 그 작은 한마디가 거룩한 카타노오멘의 시작입니다.
2. 사랑으로 서로를 불타게 하십시오 (히 10:24b)
강해: "격려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παροξυσμόν(파록시스몬, Strong's G3948)입니다. BDAG 사전은 이를 "자극, 격렬한 격려(incitement, stimulation)"로 정의하며, 오늘날 의학 용어 '파록시즘(paroxysm, 발작)'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5:39에서 바나바와 바울의 "심한 다툼"에도 같은 어근이 사용되었습니다 - 그것은 부정적 격발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24에서는 긍정적 방향으로, 사랑과 선행을 향한 강렬한 자극과 격려를 뜻합니다. 웨슬리는 자신의 신약 번역(1755년)에서 이를 "to provoke one another to love and to good works"로 옮겼습니다 - 서로를 강렬하게 도발하듯 사랑과 선행으로 이끌라는 것입니다.
해설: 요한복음 13:34에서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ἀγάπη(아가페)는 감정의 사랑이 아니라 의지와 헌신의 사랑입니다. 히브리서 10:22-24의 세 명령 - "담대히 나아가자(v.22)", "소망의 고백을 붙들자(v.23)", "서로를 격려하자(v.24)" - 은 모두 복수 1인칭 '우리가 함께'의 공동체적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께 연결할 뿐 아니라, 서로에게도 연결합니다. 수직적 신앙이 수평적 사랑으로 흘러내릴 때, 교회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예화: 18세기 영국의 요한 웨슬리는 런던 동부 빈민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소외된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느 혹독한 겨울, 누더기를 걸친 한 노파를 만났을 때 그의 손에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날 밤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주었다. 다음에는 더 많이 줄 수 있도록 더 검소하게 살겠다." 이 작은 결단이 감리교 공동체가 가난한 자를 함께 돕고 서로를 격려하는 '사회적 성결' 운동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사랑이 공동체 전체를 파록시스몬 - 사랑의 격발 - 으로 이끌었습니다. 그것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서로를 향한 뜨거운 마음 하나였습니다.
적용: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불씨가 되고 있습니까? 격려 한마디, 진심 어린 기도, 필요한 형제를 위한 작은 손길이 그 사람의 신앙에 거대한 파록시스몬이 될 수 있습니다. 웨슬리는 말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행하십시오." 당신의 작은 사랑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큰 불꽃이 됩니다.
3. 선행으로 믿음을 증명하십시오 (히 10:24c)
강해: "선행"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καλῶν ἔργων(칼론 에르곤)입니다. καλῶν(칼론, Strong's G2570)은 BDAG 사전에서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고귀한, 훌륭한(morally good, noble, praiseworthy)"으로 정의됩니다. 단순한 '좋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고귀한 행위라는 뜻입니다. ἔργων(에르곤, Strong's G2041)은 '일, 행위, 행실'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가페(사랑)와 칼론 에르곤(선행)을 함께 묶습니다. 이는 내면의 사랑이 반드시 외적 행위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결코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해설: 에베소서 2:10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 선한 일을 하도록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야고보서 2:17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5:16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웨슬리의 신학에서 '완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랑과 선행으로 채워지는 실천적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선행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픈 이웃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 홀로 사시는 어르신께 전화 한 통을 드리는 것, 힘든 청년에게 커피 한 잔을 사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 이 모든 것이 칼론 에르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이 아름다운 행위를 격려할 때, 진주충만교회는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맺는말[Conclusion]: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0:24를 통해 세 가지 소중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카타노오멘 - 서로를 깊이 살피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목하듯 서로를 주목할 때, 공동체는 진정한 돌봄의 공간이 됩니다. 파록시스몬 - 서로를 사랑으로 불타게 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의 작은 격려가 형제의 가슴에 거대한 불꽃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칼론 에르곤 -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선행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히브리서 10:19-24의 큰 흐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보혈로 열린 새 길(v.19-20),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v.22), 소망의 고백을 붙들자(v.23),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자(v.24). 이 모든 명령은 '우리가 함께'의 공동체적 외침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할 뿐 아니라, 서로와도 연결합니다. 수직적 신앙이 수평적 사랑으로 흘러내릴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삶이 되고, 교회는 세상 앞에서 빛을 발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한 분에게라도 먼저 다가가 주십시오. 그 분의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기도 제목을 물어봐 주십시오. 작은 격려의 말 한마디를 건네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 이 말씀이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말씀이 되기를, 진주충만교회가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뜨겁게 격려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서로를 깊이 살피고 사랑으로 격려하며 선행으로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눈이 열려 형제의 필요를 보고, 우리의 손이 열려 기꺼이 나누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진주충만교회가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빛 된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는 평소에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를 카타노오멘 - 마음을 기울여 깊이 살피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 제목을 물어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2.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사랑의 파록시스몬이 되고 있습니까? 내 말과 행동이 형제를 사랑과 선행으로 타오르게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냉담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3. 나의 믿음은 칼론 에르곤 - 선행으로 증명되고 있습니까? 오늘 내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선행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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