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7편 4절 칼럼 - 한 가지 소원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품고 산다. 좋은 집, 안정된 직장, 건강한 가족, 넉넉한 노후. 살면서 바라는 것들의 목록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윗이라는 한 사람은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로 압축해 버렸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왕이었던 그가 원했던 것은 재물도 권력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그것 하나였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대목은 아하트(אַחַת, "하나")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여러 소원이 아니라 단 하나의 소원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이 복잡해지고 삶이 흔들리는 이유는 대개 원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놓치기 싫은 마음이 오히려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다윗은 그 많은 것들 대신 하나를 택했고, 그 선택이 그의 인생 전체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집, 히브리어로 베이트 아도나이(בֵּית יְהוָה)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중심, 즉 삶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다윗은 궁궐의 화려함보다 성전의 고요함을 택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작 그의 마음이 머문 곳은 다른 데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 시대에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공을 다 이루고도 공허한 사람들이 있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평온한 사람들이 있다. 그 차이는 대개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가 분명한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목표가 하나로 정돈된 사람은 흔들림이 적다. 반면 원하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무엇을 얻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다윗이 사모했던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라는 표현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삶의 근원과 맞닿아 있을 때 느끼는 깊은 만족을 뜻한다. 무언가를 소유해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올바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 저절로 차오르는 평안이다.

결국 이 짧은 고백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지금 내가 구하고 있는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정말 하나만 남긴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다윗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분명함이 그의 인생을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2. 다윗처럼 "한 가지"로 소원을 압축한다면, 나는 무엇을 택하겠는가?

3. 소유가 아니라 '머무는 자리'가 삶의 평안을 좌우한다는 말에 동의하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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