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1편 11절 칼럼 - 보이지 않는 동행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우리는 날마다 길 위에 서 있다. 출근길과 등굣길, 병원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인생의 길까지. 길 위에는 늘 작은 불안이 따라온다. 뉴스에서 사고 소식이 들려오면 가슴이 철렁하고, 아이가 현관문을 나서면 마음 한쪽이 놓이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나는 안전할까?"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산다.

시편 91편은 그 질문에 대한 오래된 대답이다. 시인은 하나님을 피난처요 요새라고 노래하다가, 11절에서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명령하여 우리를 지키게 하신다고 약속한다. 히브리어로 천사는 '말아크(מַלְאָךְ)'인데, 본래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헬라어 70인역의 '앙겔로스(ἄγγελος)'도 '전령'을 뜻한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돌봄의 손길이 우리 곁에 있다는 말이다.

'명령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바(צָוָה)'는 상관이 부하에게 임무를 맡기는 데 쓰는 말이다. 우리를 지키는 일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라는 의미다. '지키게'로 옮긴 '샤마르(שָׁמַר)'는 파수꾼이 성을 지키듯 곁에서 살피고 보호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잠든 밤에도,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누군가 깨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 눈여겨볼 말은 '네 모든 길'이다. 평탄하고 환한 길만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길, 어두운 골짜기, 길을 잃은 듯한 시간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 약속은 사고나 아픔이 한 번도 없으리라는 보증이 아니라, 어떤 길에서도 혼자 걷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넘어질 수는 있어도 버려지지는 않는다. 성도가 어려움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무모함을 허락하는 면허증은 아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도 이 구절을 인용해 예수님을 시험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내 고집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다. 안전벨트를 매고 신호를 지키며 성실하게 사는 일은 믿음과 충돌하지 않는다. 지혜롭게 준비하되, 준비만으로 막을 수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오늘도 우리는 길을 나선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공기가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살리듯, 하나님의 돌보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 이 한 구절을 조용히 되뇌어 보자. 내 길의 끝까지 나를 지키시는 분이 계시다. 그 믿음 하나면 오늘 걷는 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길은 어디이며, 그 길 위에서 나는 누구에게 의지하고 있는가?
2.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누군가 나를 지켜 주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
3.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 것과 스스로 조심하고 준비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균형을 잘 잡고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