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12장 18절 John의 칼럼 - 내 몫의 평화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라"
살다 보면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한 명쯤은 있다. 직장 상사일 수도, 이웃일 수도, 가족이나 같은 교회 안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만 달라지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먼저 시선을 돌리게 한다.
본문은 "할 수 있거든"으로 시작한다. 헬라어로는 '에이 뒤나톤(εἰ δυνατόν)'이며 '가능하다면'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현실을 아는 사람이다. 모든 갈등이 내 노력만으로 풀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평화는 혼자서 만들 수 없고, 상대의 마음까지 내가 책임질 수도 없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너희로서는"이라고 말한다. 헬라어 '토 엑스 휘몬(τὸ ἐξ ὑμῶν)'은 '너희에게서 나오는 것만큼은'이라는 뜻이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내 몫의 평화는 끝까지 감당하라는 말이다. 먼저 인사하고, 말을 아끼고, 앙갚음을 내려놓는 일이 바로 내 몫이다.
평화는 갈등을 모른 척하거나 무조건 참는 것과 다르다. 진리를 버리는 타협도 아니다. 바로 앞뒤 구절에서 바울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권한다. 본문의 '에이레뉴온테스(εἰρηνεύοντες)'는 평화롭게 지내는 상태를 이어 가는 모습을 가리킨다. 평화는 소극적인 침묵이 아니라 날마다 하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현장에서 보면 관계를 깨는 것은 큰 사건보다 작은 말 한마디일 때가 많다. 반대로 얼어붙은 관계를 녹이는 것도 작은 배려다. 먼저 건네는 전화 한 통, 따뜻한 차 한 잔,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가 그렇다. 이겨서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다. 지는 것 같아도 평화를 택하는 사람이 결국 관계를 지킨다.
올해가 저물기 전에 마음에 걸리는 이름 하나를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이 달라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먼저 내딛자.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 몫만 다하면 된다. 성도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기 전에 평화를 짓는 사람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요즘 내 마음에 가장 불편하게 남아 있는 관계는 무엇이며, 그 관계에서 "내 몫"은 무엇일까?
2. 평화를 지키는 것과 불의를 모른 척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3. 상대가 변하지 않을 때도 평화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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