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장 26절 John의 칼럼 - 치료하시는 하나님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고 그의 눈에 의를 행하며 그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셨느니라"

몸이 아플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깨닫는다. 건강할 때는 당연하던 숨 쉬는 일, 밥 먹는 일, 잠드는 일이 병상에 누우면 간절한 소원이 된다. 오늘 읽는 말씀은 바로 그 연약한 인생을 향해 하나님이 직접 하신 선언이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 말씀의 배경은 광야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지만 사흘 길을 걷도록 마실 물을 찾지 못했고, 겨우 만난 마라의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다. 자유를 얻었는데도 삶은 여전히 쓰고 고단했다. 우리도 그렇다. 큰 고비를 넘기고 나면 편안할 줄 알았는데, 인생은 또 다른 마라를 우리 앞에 놓아둔다.

그 쓴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치료하시는 분"이라고 밝히셨다. 히브리어로 '치료하다'는 '라파(רָפָא)'인데, 몸의 병을 고친다는 뜻만이 아니라 깨어진 것을 다시 온전하게 한다는 뜻까지 품고 있다.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시듯 상처 난 몸과 마음, 무너진 관계까지 회복시키는 분이시다.

다만 이 약속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청종하다'로 옮긴 '샤마(שָׁמַע)'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 따른다는 뜻이다. 이는 병든 사람을 정죄하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삶의 방향을 맞추는 일이 가장 깊은 건강의 길이라는 초대다. 마음이 평안하고 관계가 바로 서면 몸도 함께 숨을 고른다.

영국의 존 웨슬리는 가난한 이들이 병원에 갈 형편이 못 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쉬운 건강 지침서를 써서 나누어 주었다. 영혼을 돌보는 일과 몸을 돌보는 일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의사와 약을 멀리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회복의 근원이 그분께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지금 당신의 삶에도 마라처럼 쓴 자리가 있을 것이다. 낫지 않는 병일 수도, 풀리지 않는 관계일 수도 있다. 그 자리에서 이 말씀을 조용히 소리 내어 읽어 보라.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분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오늘의 걸음을 붙들어 줄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마라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마라'와 같이 쓰고 고단하게 느껴지는 자리는 어디인가?
2.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따른다'는 것은 나의 하루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3. 몸의 회복과 마음의 회복을 함께 돌보기 위해 오늘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