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장 42절 John의 칼럼 - 깨어 있으라, 주의 임재를 기다리며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감람산 강론에서 나오는 경고의 음성이다. 세상의 끝날과 주의 재림을 논하실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반복하신다. 나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긴급하고도 영적 각성을 요구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주의 임재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오시니,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영적 졸음을 떨쳐야 한다.
요한 웨슬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깨어 있음'은 단순한 두려움의 경계가 아니라, 은혜의 길로 인도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The Great Assize"에서 재림의 심판을 묘사하며, 그날의 공포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미 승리한 자들의 기쁨을 선포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이미 심판의 날을 앞두고 살아야 하니, 매 순간 주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행하라." 이는 웨슬리의 삶 자체가 증언한다. 그는 영국 사회의 불의와 무관심 속에서 메소디스트 운동을 일으키며,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 개혁을 외쳤다. 왜냐하면, 주의 재림은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는 공동체의 사명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씀은 어떻게 적용되는가? 세상은 여전히 전쟁과 재난, 거짓 선지자들로 가득하다(마 24:6-11). 팬데믹과 불평등이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는 주의 임재를 기다리며 안일하게 지내기 쉽다. 그러나 웨슬리는 "Awake, Thou That Sleepest" 설교에서 경고하듯, 영적 나태는 영혼의 죽음이다. 깨어 있음이란, 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억압받는 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행위다. 웨슬리가 옥스퍼드에서 시작한 '성서의 클럽'처럼,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깨우쳐야 한다. 주의 재림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을 심판하신다.
이 구절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주의 때를 알지 못하지만,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 "인자가 오시는 그날"(마 24:50)을 기다리며, 우리는 충성된 종처럼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웨슬리의 말대로, "은혜의 완전"을 추구하며 사랑의 법을 행하라. 깨어 있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도 깨어 서서 그분의 임재를 영접하자. 아멘.
칼럼에 대한 질문:
1. 이 구절에서 '깨어 있음'이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요?
2. 웨슬리의 관점에서 주의 재림이 사회 개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3. 만약 주의 임재가 오늘 오신다면,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야 할까요?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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