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6장 7절 John의 칼럼 - 옥합을 깨뜨린 사랑, 거룩한 낭비의 신비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베다니의 한 식사 자리는 평범한 일상이었으나 한 여인의 등장으로 영원한 기억이 된다. 그녀는 조용히 다가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옥합을 깨뜨린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과 다가올 수난을 영적으로 감지한 깊은 통찰이 빚어낸 결단이다. 차가운 계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 여인의 행동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헌신이 무엇인지를 웅변한다.
존 웨슬리는 평생 성도들에게 부의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며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주라'고 가르쳤다. 이 여인의 행위는 그 가르침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향유를 주저 없이 부음으로써 재물이 결코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음을 몸소 증명한다. 웨슬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재물에 대한 집착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성결한 심령만이 도달할 수 있는 은총의 상태다.
이 사건은 외적인 형식보다 내면의 성결을 중시하는 감리교적 영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찼듯이, 성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은 주변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다. 참된 신앙은 계산기 앞의 숫자가 아니라, 주님을 향해 터져 나오는 벅찬 감격과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행위에서 그 진실성이 증명되는 법이다.
주변의 제자들은 이를 '허비'라고 비난하며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척하는 합리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웨슬리는 사회적 성결이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사랑에 기초해야 함을 역설한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지고한 경배가 결핍된 구제는 자칫 도덕적 자기만족이나 공로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향한 우선적인 사랑이야말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손길에는 어떠한 망설임이나 자신을 위한 남겨둠이 없다. 이것이 바로 웨슬리가 갈망했던, 죄의 본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직 사랑의 동기로만 움직이는 성도의 모범적인 형상이다. 그녀의 '거룩한 낭비'는 세상의 경제 논리를 뛰어넘어 하늘의 경제학을 이 땅에 실현한 사건이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품에 안고 놓지 못하고 있는가. 세상의 안목으로 보면 주님께 전부를 드리는 삶은 어리석은 허비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께 드려진 그 사랑만이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메마른 세상을 적시는 참된 은총의 통로가 된다. 옥합을 깨뜨리는 용기 없이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할 수 없음을 기억하며, 이제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쏟아부어야 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제자들이 말한 '효율적인 구제'와 여인이 보여준 '전적인 헌신'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영적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하는가?
2. 나의 삶에서 주님께 드려야 할 '매우 귀한 향유 옥합'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을 깨뜨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내면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3. 존 웨슬리가 강조한 '사회적 성결'과 '개인적 경건'이 이 여인의 행위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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