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4편 33절 John의 칼럼 - 삶의 모든 호흡이 선율이 될 때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창조의 신비와 만물을 다스리는 신성한 섭리를 묵상할 때, 인간의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고결한 반응은 바로 찬양이다. 시편 기자가 고백한 '평생의 노래'는 단순히 선율에 가사를 얹은 음악적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전체를 창조주 앞에 제물로 드리는 전인격적인 헌신의 선언이다.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듯, 인간의 생애 또한 그분을 향한 끝없는 응답이 되어야 한다. 존 웨슬리는 이러한 고백이 성도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질서와 규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었다.

찬양은 일시적인 감정의 고조나 흥분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 안에서 질서 있게 다듬어진 거룩한 습관이다. 존 웨슬리가 강조했던 '메소디스트(Methodist)'의 정신은 바로 이 찬양의 지속성에 있다. 기분이 좋을 때만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매일의 규칙적인 경건의 훈련을 통해 영혼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는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살아가는 코람 데오(Coram Deo)의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찬송가로 엮어가야 한다.

참된 찬양은 마음의 성소에서 시작되어 반드시 삶의 모든 현장으로 흘러가야 한다. 성경은 성도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예배의 시간이요, 찬양의 기회임을 가르친다. 성화의 과정을 걷는 이들에게 찬양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이다. 내면의 성결이 밖으로 드러날 때, 그 삶의 궤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화음이 된다. 따라서 찬양은 개인의 만족을 넘어 타인의 영혼을 깨우는 통로가 된다.

또한 존 웨슬리는 '사회적 성결'을 역설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입술이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손길로 이어져야 함을 분명히 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행위는 가장 높은 수준의 찬양이다. 입술의 고백이 손발의 수고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그분이 사랑하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그곳에서 정의와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한다.

고난과 시련의 어두운 밤에도 찬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환난 중에도 찬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의 유한함에 갇혀 있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져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는 죽음의 문턱에 서서도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라고 외치며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송축했다. 이처럼 죽음을 이기는 찬양이야말로 성도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결국 평생토록 드리는 찬양은 하늘나라에서 부를 영원한 노래의 예행연습이다. 이 땅에서 부르는 불완전한 노래는 장차 완성될 영광스러운 찬송을 예비하는 과정이다.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주님을 노래하는 성도는 이미 그 마음속에 천국을 소유한 복된 자들이다. 호흡이 다하는 순간까지 창조주를 기억하며 그분의 인자하심을 노래하는 삶, 그것이 바로 성도가 걸어가야 할 가장 영광스러운 길이며 존 웨슬리가 꿈꾸었던 거룩한 삶의 본질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의 일상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찬양의 선율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소음과 섞여 있는가?

2. 존 웨슬리가 강조한 '사회적 성결'의 관점에서, 내가 이번 주에 실천할 수 있는 '손길의 찬양'은 무엇인가?
3.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고 찬양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성령의 도우심은 무엇인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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