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7장 46절 John의 칼럼 - 십자가 위 처절한 사랑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칠흑 같은 어둠이 온 땅을 덮은 제구시, 골고다 언덕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의 비명이 아니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며 빚어낸 거룩한 진통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순간 온 세상의 죄짐을 홀로 지시고 아버지로부터의 단절이라는 극한의 소외를 경험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함께하실 수 없기에, 죄를 대신 짊어진 아들을 외면하셔야만 했다.
요한 웨슬리는 이 장면에서 대속의 신비가 정점에 달했음을 주목한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친교가 잠시 멈춘 듯한 이 우주적 사건은, 오직 타락한 인간을 다시 살리기 위한 전적인 희생의 증거다. 예수의 외침은 절망의 고백이 아니라 시편 22편을 인용한 승리의 서곡이기도 하다. 비록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물으셨으나, 그 끝에는 결국 하나님께 영혼을 의탁하는 완전한 순종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비움은 모든 성도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행적 은총의 통로가 된다. 웨슬리의 신학적 통찰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버려짐은 역설적으로 성도들이 결코 버림받지 않을 것임을 보증하는 확신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단절의 고통을 겪으심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 화목의 관계로 나아갈 길이 열린 것이다. 은혜를 체험한 성도는 이제 마땅히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십자가의 고뇌는 관념 속에 머무는 교리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증명되어야 할 실천적 경건의 동력이다. 웨슬리가 영국 전역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던 이유도 바로 이 십자가에서 나타난 무한한 사랑을 모든 이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고통받는 자들과 연대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은 버림받은 구주를 따르는 성도의 당연한 본분이다. 사회적 성화는 바로 이 십자가의 눈물 위에서 꽃을 피운다.
그리스도의 외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을 발견한다. 비어 있는 무덤보다 앞서 우리의 심령을 흔드는 것은, 버림받은 구주가 쏟아낸 눈물과 피다. 그 절망의 자리가 곧 희망의 시작임을 기억할 때, 성도의 삶은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한다. 웨슬리는 모든 성도가 이 사랑의 깊이를 깨달아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제 성도는 골고다의 외침을 가슴에 새기고 온전한 성화를 향한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를 위해 버림받으신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고 사랑의 종이 되어 세상을 섬길 수 있다. 십자가 위의 그 외침은 오늘날 고독과 절망 속에 있는 수많은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초대장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예수님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외침이 성도 개인에게 주는 영적 위로는 무엇인가?
2. 요한 웨슬리가 강조한 '사회적 성화'는 십자가의 고난과 어떤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는가?
3. 그리스도의 '단절'이 어떻게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연결'이 되는지 그 신학적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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