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0장 12절 John의 말씀 묵상 - 사랑이 허물을 덮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솔로몬의 잠언은 인간 관계의 두 갈래 길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미움"은 שִׂנְאָה (씨나아)로, 단순한 감정적 반감이 아니라 상대를 해치려는 적대적 의지를 뜻합니다. 이 씨나아는 מְדָנִים (메다님, 다툼·분쟁)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메다님은 복수형으로, 끝없이 번지고 확산되는 갈등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미움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분열로 몰아가는 현실이 이 한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반면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는 구절에서 "사랑"은 אַהֲבָה (아하바)입니다. 아하바는 언약적 사랑, 즉 조건 없이 헌신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가린다"는 동사 כָּסָה (카사)는 단순히 눈을 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허물을 덮어 보호하고 치유를 허락하는 적극적 행위입니다. 이 본문은 신약 베드로전서 4장 8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직접 인용할 만큼 초대교회에도 깊이 새겨진 진리였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헬라어로는 ἀγάπη καλύπτει πλῆθος ἁμαρτιῶν (아가페 칼뤼프테이 플레도스 하마르티온)이라 하여, 아가페 사랑이 죄의 무리를 덮는다고 선포합니다.

웨슬리는 이 잠언 본문에 대해, 참된 지혜는 독서와 말씀 청취, 묵상, 기도,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랑으로 허물을 덮는 능력 역시 인간의 도덕적 노력에서 오지 않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롬 5:8) 우리의 모든 허물을 친히 덮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입은 성도는 이제 동일한 사랑으로 형제자매의 허물을 덮도록 부름받습니다.

허물을 가리는 사랑은 결코 죄를 방관하거나 불의에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카사(כָּסָה)의 사랑은 상대방의 실수와 연약함을 공동체 앞에 드러내어 수치를 주지 않고, 오히려 회복의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3장이 그리는 사랑의 모습—악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를 정죄의 자리가 아닌 치유의 자리로 데려갑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정 안에서, 이웃 사이에서 미움의 불씨가 얼마나 쉽게 지펴지는지 돌아보십시오. 한마디 말, 하나의 오해, 작은 상처가 메다님(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아하바의 사랑은 그 불씨를 덮습니다. 웨슬리가 삶으로 보여준 것처럼, 사랑의 실천은 완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의 열매이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이루시는 거룩한 변화의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누군가의 허물 앞에 서게 될 때, 미움의 길을 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허물을 덮어주셨음을 기억하며, 그 은혜로 타인의 허물 위에 사랑의 옷을 입혀주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는 최근 누군가의 허물을 드러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때 나를 움직인 것은 미움이었습니까, 아니면 사랑이었습니까?

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허물을 덮어주셨다는 사실이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까?

3. 우리 공동체(가정, 교회) 안에서 사랑으로 허물을 덮는 문화를 세우기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들의 허물 앞에서 미움이 아닌 아하바의 사랑을 선택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서로를 덮고 세우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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