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8장 5-6절 John의 말씀 묵상 - 새벽을 달려 하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자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고통의 한가운데 서 있던 욥에게 친구 빌닷은 차갑고도 단호한 논리로 말을 건넵니다. 그의 말은 비록 욥의 현실을 정확히 읽지 못한 섣부른 판단이었지만, 본문 5-6절에 담긴 한 가지 진리만큼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마음에 울려 퍼집니다. 고통 중에 있는 영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구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5절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동사 שִׁחַר (샤하르, shachar)는 BDB 사전에 따르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다', '열심히 부지런히 구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웨슬리(Wesley)는 이 단어에 대해 "새벽같이 일찍, 부지런히 그분을 구하라"(rise early to seek him, if thou wouldest seek him speedily, early and diligently)고 풀이합니다. 이 한 단어 속에 얼마나 강렬한 갈망의 언어가 담겨 있는지요. 하나님을 구하는 일은 느긋한 취미가 아니라, 새벽이 밝아오기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절박한 사모함입니다. 그 하나님은 본문에서 אֵל שַׁדַּי (엘 샤다이, El Shaddai)로 불리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곧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분, 우리의 필요를 남김없이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6절은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선포합니다. 히브리어 זַךְ (자크, zak)는 '청결하다', '순수하다'는 의미이며, יָשָׁר (야샤르, yashar)는 '정직하다', '곧다'는 뜻입니다. 웨슬리는 이 절의 '의로운 처소'(habitation)를 가정과 삶의 터전으로 이해하며, 하나님은 의롭게 살아온 자의 삶을 지키시고 회복시키신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것은 단순히 눈여겨보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직접 행동하셔서 회복시키시고 평안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웨슬리 신학의 핵심인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의 빛에서 이 본문을 읽으면 더욱 깊은 의미가 열립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마음'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구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셨고, 찾고자 하는 열망조차 그분이 심어 주신 것입니다. 욥이 고난 중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이 그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빌닷의 논리처럼 고통에는 반드시 인간적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단정짓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도 찾는 자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새벽같이 일찍 그분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시편 기자도 고백했습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8).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시고, 부르는 자에게 응답하시며, 의로운 처소를 평안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성도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을 구할 때 '새벽같이 부지런히'(שִׁחַר, 샤하르)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유가 생길 때 찾는 습관적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까?

2. 전능하신 하나님(אֵל שַׁדַּי, 엘 샤다이)을 신뢰하면서도, 내 고통 앞에서 빌닷처럼 원인을 따지며 하나님을 의심한 적은 없었습니까?

3. 웨슬리의 선행적 은총 개념처럼, 내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주님을 새벽같이 찾고 간구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청결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처소를 평안으로 채우시고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을 붙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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