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3장 18절 John의 말씀 묵상 - 행함과 진실의 사랑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도 요한은 이 짧은 한 구절 안에 사랑의 본질을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사랑하다'는 ἀγαπῶμεν (아가포멘, 1인칭 복수 현재 가정법)으로 쓰여, "우리가 함께 계속 사랑하자"는 공동체적 권면입니다. '말'은 λόγος (로고스), '혀'는 γλώσσα (글로싸)로, 둘 다 언어적 표현을 가리킵니다. 반면 '행함'은 ἔργον (에르곤), '진실함'은 ἀλήθεια (알레테이아)로,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실체를 뜻합니다. 말이 사랑을 표현한다면, 행함은 사랑을 증명합니다.

웨슬리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주석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빈말의 고백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고 하며, 진정한 사랑은 반드시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웨슬리에게 있어 행함의 사랑은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에 응답하는 성화(sanctification)의 열매였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 은혜를 삶으로 흘려보낸다는 것이 웨슬리 신학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말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삶의 현장에서 그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합니다"라고 서로 인사하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를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요한은 앞 절(17절)에서 "세상 재물을 가진 자가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랑은 마음 속 감정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손과 발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진실함'(ἀλήθεια)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가식과 위선이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보여주기 위한 선행, 칭찬을 받기 위한 봉사는 사랑의 껍질만 있을 뿐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부어 주시는 참된 사랑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조건 없이 상대를 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이 바로 그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말이 아니라 몸을 내어드린 행함이었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ἀλήθεια, 곧 진실된 사랑의 완성이었습니다.

성도의 삶에서 사랑이 행함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변화시킵니다. 진주충만교회가 말씀 안에서 서로를 진실하게 섬길 때, 우리의 예배가 더욱 풍성해지고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됩니다. 작은 전화 한 통, 따뜻한 한 끼 식사, 묵묵히 곁에 있어 주는 그 시간이 ἔργον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 사랑은 어디에 있느냐?"

말씀 묵상에 대한 질문:

1. 지난 한 주간, 나는 누군가를 향해 말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 경험을 나누어 보십시오.

2. 내 삶에서 '말의 사랑'과 '행함의 사랑' 사이의 간격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성령의 도움으로 이번 주 내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말로만 사랑한다 하면서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던 저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성령의 능력으로 저의 손과 발이 주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진실함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