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6절 John의 강해 - 복음, 하나님의 능력

구절: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서론: 바울은 지금 세계 최강의 도시, 로마를 향해 편지를 씁니다. 권력과 철학과 문명이 집약된 그곳에서 복음이란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하게 선언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붙들고 살아야 할 복음의 본질과 능력을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

1. 복음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1절 상반절)

강해: 헬라어 원문(NA28)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Οὐ γὰρ ἐπαισχύνομαι τὸ εὐαγγέλιον" (우 가르 에파이스퀴노마이 토 유앙겔리온). 동사 ἐπαισχύνομαι(에파이스퀴노마이)는 '부끄러워하다, 수치스럽게 여기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현재 직설법 중간태로 쓰여, '나는 현재, 그리고 계속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εὐαγγέλιον(유앙겔리온)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의미하며 BDAG 사전은 이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선포"로 정의합니다.

해설: 바울이 복음을 전한 도시들은 결코 우호적인 곳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조롱을 받았고, 아덴에서는 철학자들이 비웃었으며, 빌립보에서는 투옥을 당했습니다. 그가 로마에 편지를 쓸 당시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이며 핍박받는 공동체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복음은 실패한 나사렛 목수의 이야기였습니다. 웨슬리(John Wesley)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주석합니다. "세상에서 복음은 어리석음이요 약함으로 보인다. 따라서 세상의 판단으로는 그(바울)가 수치스럽게 여겨야 마땅하다. 특히 세계의 수도요 중심인 로마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바울은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으니, 그것이 믿는 모든 이를 하나님의 방식대로 구원하는 크고 영광스러운 능력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Wesley's Explanatory Notes on Romans 1:16).

적용: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직장에서, 가족 모임에서, SNS에서 우리는 얼마나 담대하게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까? 웨슬리는 1739년 야외 설교를 시작할 때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두려움 대신 확신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세상이 어떻게 보든, 복음이 내 삶을 바꾼 능력임을 기억한다면 결코 부끄러워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나의 수치가 아니라 나의 자랑입니다.

2.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절 중반절)

강해: "δύναμις γὰρ θεοῦ ἐστιν εἰς σωτηρίαν" (뒤나미스 가르 데우 에스틴 에이스 소테리안). 핵심 단어는 δύναμις(뒤나미스)입니다. BDAG 사전은 이를 "어떤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 혹은 힘"으로 정의하며, 영어의 'dynamite'(다이나마이트)와 'dynamic'(역동적)이 바로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리고 σωτηρία(소테리아)는 단순한 '구원'을 넘어 "위험이나 멸망으로부터의 안전, 구출, 보존"을 뜻합니다.

해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시는 살아 있는 능력이며, 죄와 사망의 권세를 꺾고 인간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동력입니다. 웨슬리는 이 복음의 능력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구원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를 구원하는 크고 영광스럽게 강한 수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웨슬리 신학에서 이 능력은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으로도 작동합니다. 곧, 우리가 복음을 듣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는 은혜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화: 1738년 5월 24일 밤, 존 웨슬리는 런던 알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작은 모임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 낭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구원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 복음의 능력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50년간 웨슬리는 말을 타고 40만 킬로미터 이상을 달리며, 4만 회 이상 설교하고, 수십만 명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복음은 한 사람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그를 통해 세상까지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문제 앞에 서 있습니까? 질병, 관계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깊은 두려움 - 그 모든 것 앞에서 복음은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복음은 능히 해결합니다. 이 능력을 매일 신뢰하며 사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3. 복음은 믿는 모든 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1절 하반절)

강해: "παντὶ τῷ πιστεύοντι, Ἰουδαίῳ τε πρῶτον καὶ Ἕλληνι" (판티 토 피스튜온티, 유다이오 테 프로톤 카이 헬레니). παντὶ(판티)는 '모든,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을 의미하는 포괄적 표현입니다. πιστεύοντι(피스튜온티)는 현재분사로 '지금도 계속 믿고 있는 자'를 뜻합니다. 즉 구원은 과거의 단 한 번의 결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믿음의 상태 안에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해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이 구절은 구원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역사적 순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스라엘을 통해 시작되었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로 확장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이에 대해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에게도 절대적으로 복음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위대한 나라(로마)에게도 그들의 구원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담대하게 말한 것"이라고 주석합니다. 웨슬리의 완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교리는 바로 이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구원이 칭의(稱義)에서 멈추지 않고, 사랑 안에서의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또한 에베소서 2장 8절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라고 선언하며, 이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확인합니다.

적용: 복음은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 종교적으로 성실한 사람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의 모든 분들 - 오래 믿은 성도든, 처음 교회에 나온 분이든, 삶이 무너진 분이든 -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이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3)는 약속이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문 앞에 서십시오.

맺는말[Conclusion]: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를 향해 담대히 선포한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은 복음을 어리석다 하고, 약하다 말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 비웃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2천 년 동안 수많은 인생을 바꾸어 왔고, 그 능력은 오늘 이 자리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우리의 자격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학식이 많아서도 아니고, 선행이 쌓여서도 아니며, 오직 믿음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웨슬리가 알더스게이트에서 뜨거워진 가슴으로 체험했던 그 능력은, 오늘 이 예배당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실 때, 믿음으로 그 문을 열어 드리십시오.

오늘,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복음을 삶의 변두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내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 속에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사는 삶 - 그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신 복음이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을 새롭게 세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바울처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하시고, 복음이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그 능력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에 대한 질문:

1. 나는 일상의 어떤 순간에 복음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2. '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복음이 나의 삶에서 실제로 역사한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3. 웨슬리의 알더스게이트 체험처럼, 복음이 내 삶의 진정한 중심이 되기 위해 오늘 내가 해야 할 결단은 무엇입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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