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9장 22절 John의 칼럼 - 기쁨의 완성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바뀌어 기쁨이 되고 애통이 바뀌어 기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유다 민족에게 닥쳤던 슬픔이 기쁨으로, 애통이 환희로 바뀐 역사적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승전에 머물지 않는다. 고난과 위기 속에서 신실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공동체는 반드시 거룩한 변화를 맞이한다. 비탄이 찬송으로 바뀌는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삶 전체를 사로잡았음을 증명하는 분수령이다.

참된 은혜는 개인의 심령 안에만 갇혀 있을 수 없다. 은혜를 경험한 성도의 삶에는 반드시 사회적 성화와 사랑의 열매가 뒤따라야 한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뀐 진정한 축복은 나만의 기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구체적인 행위로 확장될 때 비로소 거룩한 완성에 이른다.

부림절의 잔치는 단순한 유흥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서로 예물을 나누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응답하는 성도의 마땅한 삶의 자세를 보여 준다. 베풀고 나누는 실천이 빠진 감사와 기쁨은 영적 이기주의로 흐르기 쉽다.

구제와 나눔은 성도가 마땅히 지녀야 할 거룩한 의무이자 사랑의 실천이다. 사회적 이웃을 향한 관심과 돌봄이 결여된 은혜는 온전하지 못하다. 빈궁한 자를 돌아보고 물질과 사랑을 흘려보낼 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비로소 세상 가운데 온전히 드러나고 증명된다.

성도의 삶은 개인적 경건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이웃의 슬픔을 돌아보고 그들의 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실천적 경건의 본질이다. 구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가장 확실한 고백이며, 세상을 변혁시키는 거룩한 동력이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이제 성도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개인의 은혜 체험이 사회적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세상은 성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참된 평안과 기쁨을 목격하게 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내 삶에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뀐 은혜의 경험이 이웃을 향한 구제와 나눔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2. 개인적 경건을 넘어서 사회적 성화와 사랑의 실천을 이루기 위해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은 무엇인가?
3. 나눔과 구제를 통해 공동체 안에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확장하는 일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는가?

p.s: 진주 충만성결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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