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편 5-6절 칼럼 - 붙드시는 은혜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내가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많은 사람이 밤이면 뒤척인다. 내일의 회의, 갚아야 할 대출, 자녀의 성적, 관계의 균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잠은 몸을 쉬게 하는 시간이지만, 마음이 불안하면 눈을 감아도 쉬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한 사람이 태연히 잠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윗이 시편 3편을 쓸 때, 그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궁에서 쫓겨나 광야를 떠도는 처지였다. 자신을 낳고 기른 자식이 자신을 죽이려 했고, 백성의 마음도 등을 돌렸다. 문자 그대로 사방이 적이었다. 그런 밤, 보통 사람이라면 뜬눈으로 지새우거나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이는 상황을 낙관해서 나온 무모한 배짱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힘이 자기 손에 있지 않고, 더 크고 신뢰할 만한 손에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잠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깨었으니'라는 말이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눈을 뜨는 행위가 아니라, 밤사이 자신을 노리는 위협 속에서 다시 살아 눈을 뜬 것 자체를 기적처럼 고백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다윗에게는 그것이 곧 붙드심의 증거였다.

영국의 신학자 존 웨슬리는 인간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우리를 감싸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선행적 은총'이라 불렀다. 우리가 잠든 사이, 우리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를 지탱하는 손길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만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다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되는 통찰이다.

다윗은 이어 고백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오늘 우리를 둘러싼 것은 화살과 창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와 감당하기 벅찬 책임일 것이다. 그러나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그 평범한 순간이 실은 붙드심의 증거임을 안다면, 오늘 하루도 다시 걸어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를 붙드는 손이 있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는가?
2.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는 무엇에 의지하는가?
3. 오늘 아침 눈을 뜬 순간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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