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3장 7절 칼럼 - 자라게 하시는 분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우리는 종종 결과 앞에서 누구의 공로인지를 먼저 따진다. 회사에서 성과가 나오면 누가 기획했는지, 누가 마무리했는지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자녀가 좋은 성적을 받으면 부모는 은근히 자신의 교육 방식을 자랑하고 싶어진다. 무언가 잘된 일 앞에서 자기 몫을 챙기려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바울이 편지를 쓰던 고린도교회도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이는 바울에게, 어떤 이는 아볼로에게 줄을 섰다. 누가 더 뛰어난 스승인지, 누구의 가르침이 옳은지를 두고 공동체는 갈라졌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지도자를 따르며 그의 이름 아래 자신을 세우고 싶어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심는 사람도, 물 주는 사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씨를 심는 수고와 물을 주는 정성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 씨앗을 싹 틔우고 자라게 하는 일은 사람의 손을 벗어난 영역이다. 농부가 아무리 애써도 생명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말씀은, 결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다시 알려준다.
이 원리는 오늘 우리의 자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장에서 좋은 결과를 냈을 때,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 여기면 함께 애쓴 동료의 수고는 쉽게 지워진다. 가정에서 자녀가 잘 자랐을 때도,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씨를 뿌리고 누군가는 물을 주지만,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사람의 계획을 넘어서는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의 수고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심는 일과 물 주는 일은 여전히 소중하다. 다만 그 결과 앞에서 겸손해질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 역할을 다하되 결과를 독점하지 않는 태도, 함께 애쓴 이들의 몫을 인정하는 마음, 그리고 마지막에는 더 큰 손길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자세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성과 앞에서 누구의 공인지를 따지기보다, 함께 심고 함께 물 주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면 어떨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존재이지, 결과의 주인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협력은 다툼이 아니라 은혜가 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최근 이룬 성과 중에서, 온전히 나의 힘만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있었는가?
2. 함께 애쓴 사람의 수고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3. 결과를 내려놓고 겸손하게 협력하는 삶을 위해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태도는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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