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94편 19절 칼럼 - 근심 속의 위안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현대인의 하루는 크고 작은 근심으로 채워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걱정, 밤늦도록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들이 있다. 돈 문제, 건강, 자녀,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른다. 시편 94편의 기자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악인들이 활개 치는 세상 속에서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근심이 끓어올랐다고 고백한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근심'으로 번역된 단어는 '사르아파이(שַׂרְעַפַּי)'로,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생각과 불안한 상념들이 겹겹이 쌓인 상태를 가리킨다. 단순한 걱정 하나가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생각의 소용돌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잠 못 이루며 겪는 그 심리적 무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이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 근심의 고백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곧바로 '주의 위안'을 이야기한다. 원어로 '탄후메카(תַּנְחוּמֶיךָ)'라 불리는 이 단어는 '나함(נחם)'이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슬픔이나 근심에 잠긴 이를 다독이고 안심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근심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보다 더 크고 부드러운 위로의 손길이 있다는 확신이 이 구절의 핵심이다.
이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고린도후서 1장 3~4절)이라 고백했고,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고 초청하셨다. 근심의 자리에 머물지 말고 위로의 근원을 찾아가라는 것이 성경의 한결같은 초대다.
이 위로는 종교적인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보다 크고 신뢰할 만한 존재의 위안을 갈망한다. 성도가 신앙 안에서 발견하는 이 위로의 경험은, 문제가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함께 짊어질 손길이 있다는 확신에서 온다. 근심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붙들어주는 힘이 있다.
오늘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운 이가 있다면, 잠시 멈추어 자신의 근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근심 위에 덧입혀지는 더 큰 위로가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시편 기자가 그러했듯, 근심의 한복판에서도 영혼이 다시 즐거워질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최근 나를 짓누르던 근심은 무엇이었으며, 그 근심은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어지럽혔는가?
2. '위로'라는 단어가 나에게 실제로 경험된 순간이 있다면 어떤 상황이었는가?
3. 근심이 사라지지 않아도 마음의 평안을 지킬 수 있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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