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19장 30-31절 John의 칼럼 - 주가 쓰신다
"이르시되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나귀 한 마리가 역사를 바꾼 날이 있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두 제자를 맞은편 마을로 보내시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찾아 풀어 오라고. 그리고 누군가 묻거든 단 한 마디로 답하라고 하셨다. "주가 쓰시겠다(헬라어: ὁ κύριος αὐτῆς χρείαν ἔχει, 호 퀴리오스 아우테스 크레이안 에케이 — '주님이 그것을 필요로 하신다')." 이 짧은 선언 안에 복음의 본질이 담겨 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신다.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라는 표현은 단순한 상황 묘사가 아니다. 구약에서 성별된 것, 거룩한 용도에 쓰일 것은 아직 사용된 적 없는 것이어야 했다(민수기 19:2, 신명기 21:3). 예수님은 이 나귀를 통해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선포하고 계셨다. 스가랴 선지자는 수백 년 전 이미 예언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그는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 우연이 아니라 섭리였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이 이 나귀의 주인을 미리 아셨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그 나귀가 어디 매여 있는지, 그 주인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이미 알고 계셨다. 헬라어 원문에서 '주(κύριος, 퀴리오스)'는 단순히 '선생님'이 아닌 절대적 주권자를 의미한다. "주가 쓰시겠다"는 말은 곧 "우주의 주권자가 이것을 요청하신다"는 선언이다. 나귀 주인은 그 말 한 마디에 순순히 내어 주었다. 소유권보다 더 큰 권위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내 것을 내어드리는 일을 두려워한다. 시간도, 재능도, 관계도 "아직 내가 써야 할 것들"로 꽉 쥐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요청은 언제나 낭비가 없다. 그 나귀는 그날 예루살렘 성 안으로 호산나 소리와 함께 걸었다. 아무도 타 보지 않았던 미천한 나귀가, 왕 중의 왕을 등에 태운 나귀가 된 것이다. 우리의 가장 평범한 것, 가장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도 주님께 드려질 때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오늘 이 본문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주가 쓰시겠다"는 말이 내 삶에 들릴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귀 주인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드릴 수 있는가? 웨슬리(John Wesley)는 평생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없다. 우리는 청지기일 뿐이다." 청지기는 주인이 요청할 때 즉각 응답한다. 그것이 신앙의 실천이며,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주가 쓰시겠다" — 이 한 마디가 평범한 나귀를 역사 속 나귀로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은 우리를 향해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실지 모른다. 내 안의 어떤 달란트, 어떤 여백, 어떤 관계를 향해 "내가 쓰겠다"고 손을 내밀고 계실지 모른다. 두려워하지 말자. 주님의 손에 들린 것은 반드시 아름다운 쓰임이 된다. 나귀가 그랬듯,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내 시간, 재능, 소유 중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것"처럼 주님께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2.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이 내 삶에 들릴 때, 나의 첫 반응은 순종인가, 아니면 계산인가?
3. 내가 가장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부분이 오히려 주님께서 가장 쓰고 싶어 하시는 부분은 아닐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John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명기 28장 6절 칼럼 - 들어와도 복, 나가도 복 (1) | 2026.03.14 |
|---|---|
| 요한복음 14장 6절 칼럼 - 나는 길이요 (1) | 2026.03.13 |
| 요한복음 15장 16절 칼럼 - 택함 받은 자 (1) | 2026.03.11 |
| 에베소서 4장 3절 칼럼 - 하나 되게 하라 (0) | 2026.03.10 |
| 시편 21편 1절 칼럼 - 왕의 기쁨 (0) | 2026.03.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