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언 29장 23절 John의 칼럼 - 낮아짐의 역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우리는 높아지고 싶어 한다. 더 인정받고, 더 주목받고, 더 앞서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그런데 솔로몬은 수천 년 전에 이미 이 본능이 얼마나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지 꿰뚫어 보았다.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아지는 자는 높아진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그 역설이 더 선명하다. 본문은 "גַּאֲוַת אָדָם תַּשְׁפִּילֶנּוּ וּשְׁפַל־רוּחַ יִתְמֹךְ כָּבוֹד"(가아밧 아담 타쉬필렌누 우쉐팔-루아흐 이트모크 카보드)로 시작한다. 여기서 '교만'을 뜻하는 גַּאֲוָה(가아와)는 스스로를 부풀려 실제보다 크게 보이려는 태도를 가리키며, '겸손'에 해당하는 שְׁפַל־רוּחַ(쉐팔-루아흐)는 문자 그대로 '낮은 영(靈)', 즉 자신의 실제 자리를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낮은 영의 사람이 '영예(כָּבוֹד, 카보드)'를 붙들게 된다고 말한다. 카보드는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게감 있는 영광, 실질적인 존귀함을 뜻한다.
교만이 왜 사람을 낮아지게 하는가? 교만은 관계를 끊는다. 교만한 사람 곁에는 사람이 머물지 않는다.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모여들지만, 결국 하나둘 떠난다.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는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성경은 반복해서 경고한다(약 4:6, 벧전 5:5). 스스로 가득 찬 그릇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질 틈이 없다. 그래서 교만은 결국 고립과 몰락으로 이어진다.
반면 겸손은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겸손한 사람은 배울 수 있고, 충고를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역사 속에서도 겸손한 지도자가 결국 오래 남았고, 더 많은 사람의 가슴에 살아남았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민 12:3)는 평가를 받았고,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라고 직접 선언하셨다. 겸손은 나약함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내면의 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유독 자기 과시와 자기 홍보가 미덕처럼 여겨진다. SNS에는 자신을 더 크게, 더 멋지게, 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려는 몸짓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 무대 뒤에는 불안과 공허함이 도사린다. 진짜 영예는 포장 속에 있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삶 앞에서 진실하게 낮아질 때 비로소 오는 것이다. 진주라는 도시에서, 지금 이 글을 읽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낮아짐의 역설을 삶으로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교만은 스스로 높이려는 몸짓이지만, 겸손은 하나님이 높여 주시기를 기다리는 신앙의 자세다. 오늘, 우리가 쥐고 있는 자존심과 체면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묻자.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낮은 영을 지니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솔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카보드 -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영예 - 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일상에서 겸손과 자기비하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겸손은 어떤 모습인가?
2. 교만이 관계를 무너뜨린 경험이 있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가르치고 계셨는가?
3. 오늘 내가 내려놓아야 할 '높아지려는 마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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