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라디아서 6장 9절 John의 칼럼 - 지치지 않는 삶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살다 보면 누구나 지치는 순간이 온다.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고,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이나 냉담함뿐일 때, 사람은 어느 순간 조용히 손을 놓아버리고 싶어진다. 그 지침은 게으름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애써온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종류의 피로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 지침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μὴ ἐγκακῶμεν(메 엥카코멘)"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이는 단순한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운이 빠져나가는 내면의 소진을 가리킨다. 또한 "μὴ ἐκλυόμενοι(메 에클뤼오메노이)"는 끈이 풀리듯 힘이 완전히 빠지는 상태를 뜻한다. 바울은 이 두 단어를 나란히 사용하며, 우리가 얼마나 깊은 지침에 시달릴 수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럼에도 멈추지 말 것을 권면한다.
18세기 영국의 목사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이 말씀을 삶으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는 일생 동안 40만 킬로미터 이상을 말을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4만 회가 넘는 설교를 했으며, 숱한 반대와 조롱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웨슬리가 즐겨 인용한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핵심은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미래 직설법 약속, 즉 "θερίσομεν(테리소멘)"에 있었다. 이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온다.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나서 땅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볼 수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침묵의 시간이 수확을 향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농부는 그 자리를 지킨다. 선을 행하는 삶도 그와 같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그 행위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자라고 있다. 바울이 말한 "καιρῷ ἰδίῳ(카이로 이디오)",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때'는 인간의 계산표 위에 있지 않다.
선을 행하다 지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지쳤다는 이유로 그 자리를 영영 떠나버리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웨슬리는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힘을 다 쏟아낸 그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된다고. 우리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 오히려 하나님의 손이 가장 가까이 있는 때일지 모른다.
오늘도 지쳐 있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바울의 말은 그런 사람을 향한다.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수확의 씨앗이다.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반드시 거둔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영역에서 지침을 느끼고 있으며,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를 무엇에서 찾고 있는가?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소극적인 체념인가, 아니면 능동적인 신뢰인가? 나에게 그 경계는 어디인가?
3. 주변에서 선을 행하다 지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어떤 말과 행동으로 동행할 수 있을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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