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4편 8절 John의 칼럼 - 우리의 도움은 어디서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만약에'를 마주한다. 만약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만약 그 순간이 달랐더라면, 만약 내가 더 준비되어 있었더라면. 시편 124편은 바로 그 '만약에'로 시작하는 노래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라 —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이 짧은 가정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떨리는 고백이다.

이 시는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 이어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히브리어: שִׁיר הַמַּעֲלוֹת, 쉬르 하마알로트) 가운데 하나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걸으며 함께 불렀던 노래들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예배당으로 향하는 주일 아침이 이 순례의 현대적 형태일지도 모른다. 무거운 한 주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 발걸음 말이다.

8절에서 시인은 신앙의 핵심을 단 한 문장으로 집약한다. 히브리어 원문은 "עֶזְרֵנוּ בְּשֵׁם יְהוָה עֹשֵׂה שָׁמַיִם וָאָרֶץ" (에즈레누 베솀 아도나이 오세 샤마임 바아레츠)로, '우리의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의 이름 안에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름'(שֵׁם, 솀)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분의 성품, 능력, 임재 전체를 가리킨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 자신을 부르는 것이다. 존 웨슬리는 이 구절에 대해, 하나님의 도움은 인간의 능력이나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창조주의 전능한 이름 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그 이름이 곧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라는 것이다.

'천지를 지으신 분'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묵직한 안도감을 준다. 별을 배치하고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그분이 내 삶에도 개입하신다는 사실은, 작은 사람에게 거대한 우산이 되어준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 — 병, 실직, 관계의 파탄, 시대의 불안 — 이 모두가 그분이 지으신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창조주는 피조물에 의해 압도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그러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값싼 위로가 아니다. 시편 기자는 시의 앞부분에서 "물이 우리를 휩쓸었을 것이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실제로 두려운 상황을 통과했고, 그 무게를 숨기지 않는다. 신앙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한가운데서도 더 큰 손을 붙드는 것이다.

오늘, 당신이 어떤 물살 속에 있든 이 고백이 닿기를 바란다. 우리의 도움은 인맥이나 재력이나 능력에 있지 않다. 천지를 지으신 그 이름, 그분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아직도 살아 있고, 아직도 듣고 있으며, 아직도 일하고 있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평소에 어디서 '도움'을 구하는가? 하나님의 이름보다 먼저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돌아본 적이 있는가?

2. '천지를 지으신 분'이 나의 일상 문제에도 관여하신다는 사실이 실감되는가, 아니면 그저 교리적 명제로만 남아 있는가?

3. 시편 기자처럼 위기를 통과한 후, 나는 그 경험을 감사와 고백의 언어로 기록하거나 나눈 적이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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