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 10-11절 John의 칼럼 - 생명을 사랑하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따르라"

말을 잘못 뱉어 후회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순간적인 분노, 무심코 던진 한마디, 과장된 험담 - 그 말들은 공기 중에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베드로는 바로 그 '말'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는 것 - 을 얻는 길을 제시한다.

헬라어 원문에서 "생명을 사랑하고"는 필레오 조에(φιλέω ζωή)의 개념을 담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이 아니라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가리킨다. 베드로가 인용한 이 구절은 시편 34편 12-14절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했던 다윗의 고백에서 비롯된다. 좋은 삶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혀와 입술을 다스리는 훈련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악한 말을 그치는 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거짓과 상처 주는 언어로부터 자신을 능동적으로 분리하는 거룩한 의지의 행위"라고 설명하였다. 웨슬리는 언어의 절제를 성화(Sanctification)의 구체적 증거로 보았다. 말의 거룩함이 곧 삶의 거룩함으로 이어진다는 통찰이다.

11절은 더 나아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고 명령한다. 헬라어 에크클리노(ἐκκλίνω)는 단순히 악을 피하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방향을 틀어 돌아서는' 적극적 전환을 의미한다. 선을 행하는 것은 나쁜 것을 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선행의 정점에 "화평을 구하여 이를 따르라"는 명령이 놓여 있다. 화평(에이레네, εἰρήνη)은 단순한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된 온전한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는 지금 말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SNS, 유튜브, 댓글 - 사방에서 말들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러나 말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관계는 더 깊이 상처를 입는 역설이 이 시대의 현실이다. 베드로의 권면은 2,000년 전의 것이지만, 오늘 우리의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더욱 절실하게 울린다. 좋은 날을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오늘 내 혀를 다스리라.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다. 오늘 하루 한 마디 말을 참는 것,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불필요한 갈등에서 발을 빼고 화평의 자리로 돌아서는 것 -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 '좋은 날'이 된다. 베드로가 말하는 복된 삶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입술에서 시작된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오늘 내가 내뱉은 말들을 되돌아볼 때, 그 말들이 생명을 살리는 말이었는지 상처를 주는 말이었는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2. "화평을 구하여 이를 따르라"는 명령이 직장, 가정, 교회 공동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실천될 수 있는가?

3. 웨슬리가 말한 '언어의 절제'를 성화의 증거로 본다면, 나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은 성화의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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