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4편 14절 John의 칼럼 - 악을 떠나 평화를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이 짧은 한 절에 삶의 방향이 전부 담겨 있다. 다윗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하며 목숨을 건진 직후 쓴 시편 34편은, 극적인 구원의 체험에서 흘러나온 고백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 벅찬 감격을 자랑하는 대신, 조용히 삶의 지혜를 전한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고, 화평을 찾아 따르라." 이 세 가지 명령은 화려한 신앙 구호가 아니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다.

첫 번째 명령, 수르 메라(סוּר מֵרָע) - "악을 떠나라"는 단순히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금지가 아니다. '수르(סוּר)'는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것, 곧 완전한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웨슬리는 이 구절을 주석하며 "모든 죄로부터 떠나라(Depart - From all sin)"고 해설했다. 악은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있다. 그것은 거창한 범죄가 아니라 일상의 거짓말, 가벼운 험담, 남을 무너뜨리는 분노로 찾아온다. 진정한 용기는 그 유혹에서 과감히 방향을 틀어버리는 데 있다.

두 번째 명령, 와아세 토브(וַעֲשֵׂה־טוֹב) - "선을 행하라"는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빈 자리는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 악에서 물러선 그 자리에, 선이 들어와야 한다. 웨슬리는 이를 "모든 사람에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Be ready to perform all good offices to all men)"는 뜻으로 풀었다. 선은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내 앞에 있는 사람, 내 곁에 있는 이웃에게, 지금 당장 손을 내미는 것이다.

세 번째 명령이 가장 독특하다. 밧케쉬 샬롬 베라드페후(בַּקֵּשׁ שָׁלוֹם וְרָדְפֵהוּ) - "화평을 찾아 따르라." 히브리어 '라다프(רָדַף)'는 '쫓아가다', '추격하다'는 강렬한 동사다. 화평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때로는 숨이 차도록 뒤쫓아야 한다. 웨슬리는 "화평이 달아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끝까지 따라가라(follow hard after it, when it seems to flee away from thee)"고 했다. 화평은 수동적인 태도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해를 먼저 풀러 가고, 상처받은 관계를 먼저 회복하러 나서고, 갈등의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포기하지 않는 적극적인 의지의 산물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악은 교묘하게 정의의 얼굴을 쓰고 우리를 유혹하고, 선은 번거롭다는 이유로 미뤄지고, 화평은 나약함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은 분명하다. 삶의 진짜 복은 악에서 돌아서고, 선을 실천하며, 화평을 추구하는 데 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당신의 오늘 하루, 악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선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며, 화평을 향해 달려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그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쌓여,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새롭게 빚어간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오늘 어떤 '악'에서 방향을 돌이켜야 할 필요를 느끼는가? 그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지금 내 삶에서 '수르(방향 전환)'가 필요한 영역은 어디인가?

2. 선을 행하는 것이 번거롭거나 두려워 미루고 있는 일이 있는가? 내 주변에서 지금 당장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3. 화평을 '쫓아가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내가 먼저 화해와 평화를 위해 나서야 할 관계나 상황이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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