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0장 12절 John의 칼럼 - 사랑은 허물을 덮는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참으로 말이 많은 시대다. 누군가의 실수 하나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가고, 한때의 잘못이 영원한 낙인처럼 사람에게 붙어 다닌다. 잊혀질 권리는 사라진 지 오래고, 용서보다 폭로가 더 빠른 박수를 받는 세상이다. 이 시대에 솔로몬의 잠언 한 구절이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말을 건넨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히브리어 원문에서 '미움'은 שִׂנְאָה (씨느아)로, 단순한 감정적 반감이 아니라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적대적 태도를 가리킨다. 그 미움이 '다툼을 일으킨다'고 할 때 쓰인 동사 עוֹרֵר (오레르)는 '잠들어 있던 것을 깨운다'는 뜻이다. 즉, 미움은 이미 꺼져가던 갈등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반면 '사랑은 허물을 가린다'에서 '가린다'는 כִּסָּה (키싸)로, 단순히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보호하고 품는 행위를 뜻한다. 사랑은 허물을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덮어주는 결단이다.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이 구절에 대해 "미움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다툼의 빌미가 되지만, 서로 참고 견딤으로써 평화와 화합이 보존된다"고 해설하였다. 웨슬리는 단순히 신학자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18세기 영국의 산업화 사회에서 소외된 광부들과 가난한 노동자들 사이로 직접 들어가, 차갑고 적대적인 세상 한가운데에서 사랑의 덮음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사랑은 교리가 아니라 생활이었다.

신약성경도 이 진리를 거듭 확인한다. 베드로는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고 했고, 야고보는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라"(약 5:20)고 썼다. 여기서 '덮는다'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는 묵인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 안에서 상대방이 회복될 공간을 지켜주는 것이다. 미움은 허물을 들추어 사람을 죽이고, 사랑은 허물을 덮어 사람을 살린다.

우리 일상을 돌아보면 얼마나 쉽게 미움의 언어를 쓰는지 깨닫게 된다. 배우자의 오래된 실수를 다시 꺼내는 말, 동료의 약점을 뒤에서 이야기하는 습관, 자녀의 실패를 오래 기억하는 눈빛. 이것들이 모두 조용한 형태의 '씨느아'(미움)다. 반대로 사랑은 허물을 기억하되 무기로 삼지 않고, 알되 드러내지 않으며, 아프되 끌어안는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가장 강인한 인간의 선택이다.

오늘 이 한 구절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지금 누군가의 허물을 덮고 있는가, 아니면 드러내고 있는가.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덮는 것으로 증명된다. 잠들어 있는 갈등을 깨우는 자가 되지 말고, 상처를 품어 치유하는 자가 되자. 그 선택이, 오늘 우리 곁의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최근 누군가의 허물을 '덮는' 선택을 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은연중에 드러낸 적이 더 많은가?

2.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문화 속에서 '사랑으로 덮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3. 웨슬리처럼 사랑을 교리가 아닌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 내가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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