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71절 John의 칼럼 - 고난이 스승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는 고난을 피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고난은 실패의 증거요, 불행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놀라운 고백을 남겼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 한 마디는 고통의 한복판에서 길어 올린 깊은 진실이다. 그것은 감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삶이 몸으로 배운 지혜의 언어다.

히브리어 원문을 들여다보면 그 깊이가 더욱 선명해진다. "고난 당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עֻנֵּיתִי (운네이티, Pual 완료형)로, '아나'(עָנָה, anah) 동사의 수동형이다. 이 단어는 단순한 외부적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해 낮아지고 훈련되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고난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담긴 훈련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율례들"로 번역된 חֻקֶּיךָ (훅케카)는 하나님께서 규정하시고 새겨 주신 삶의 질서를 의미한다. 고난은 그 질서를 마음 깊이 새기게 하는 학교였다.

존 웨슬리는 이 본문과 연결된 시편 119:75에 주석을 달면서, 하나님의 고난은 신실하심 가운데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목적으로 허락된 것이라고 말했다. 웨슬리 자신도 거리 설교와 사역의 현장에서 수없는 냉대와 박해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난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더 깊이 엎드리게 했음을 고백했다. 형통할 때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무릎이 꺾이는 순간, 비로소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다.

시편 기자는 바로 앞 67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이전과 이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고통은 그를 꺾은 것이 아니라 돌아서게 했다. 방향 없이 흩어졌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여든 것이다. 이것이 고난의 역설이다. 잃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소중한 것을 얻는 시간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다르지 않다. 갑작스러운 질병, 뜻밖의 상실, 관계의 파탄, 재정의 위기 -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을 흔들 때, 사람들은 흔히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는다. 그 물음은 정당하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물음에 다른 차원의 대답을 건넨다. "고난이 나를 가르쳤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성도의 삶에서 고난은 믿음의 반증이 아니라 성숙의 통로다. 하나님은 우리를 편안함 속에서만이 아니라, 때로 거친 손길로 빚어 가신다. 도예가가 진흙을 손으로 누르고 형태를 잡듯,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 안에 말씀의 질서를 새겨 가신다. 고난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유익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았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당신이 경험한 고난 중에서,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그것이 유익이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2. 형통할 때보다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하나님의 훈련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그 고난을 통해 어떤 것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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