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4장 27절 John의 칼럼 - 세상이 줄 수 없는 것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는 지금 '평안'이라는 단어가 가장 귀한 시대를 살고 있다. 뉴스는 하루도 쉬지 않고 불안을 전송하고, 스마트폰은 새벽잠을 깨우는 알림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평안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명상 앱을 구독하고, 비싼 힐링 프로그램에 등록한다. 그런데 그 평안은 왜 그렇게 쉽게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작별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단 하나의 선물을 남기셨다. 바로 '평안'이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단어는 에이레네(εἰρήνη, 에이레네)로,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내적 완전함과 충만함을 뜻한다. 히브리어 샬롬(שָׁלוֹם, 샬롬)과 맥을 같이 하는 이 단어는 '온전함', '결핍 없음', '하나님 앞에서의 완전한 화해'를 품고 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 깊이부터 다르다.
존 웨슬리는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예수님의 평안을 두 층위로 나누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는 하나님과의 화목, 그리고 자신의 양심과의 화목이라는 '일반적 평안'이고, "나의 평안"은 예수님 자신이 누리시고 또 직접 창조하시는 '특별한 평안'이라고 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불만족스럽고, 불안정하며, 순간적이지만, 예수님의 평안은 영혼을 한결같은 고요함으로 채운다고 웨슬리는 감격하며 적었다. "주님, 이 평안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소서!"
우리가 원하는 평안은 대개 '조건부'다. 문제가 해결되면, 관계가 회복되면, 통장 잔고가 넉넉해지면 평안할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건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그 자리에서 평안을 주셨다.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박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평안은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다.
우리 삶에서 예수님의 평안을 경험하려면 그 평안이 '십자가의 피를 통해 이루어진 화목'에서 온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웨슬리가 강조한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처럼, 이 평안은 우리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건네시는 선물이다. 받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웨슬리의 표현처럼 이 선물을 "온 힘을 다해 지켜" 나가다 보면, 그것은 마침내 영원한 평안으로 이어진다.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마음이 잔잔할 수 있는 사람, 흔들리는 환경 속에서도 내면이 고요한 사람 — 그것이 예수님의 평안을 받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 평안은 구매할 수 없고, 협상할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디서 평안을 구하고 있는가.
칼럼에 대한 질문:
1. 내가 지금 평안을 찾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어떻게 다른가?
2. '조건이 해결되어야 평안해진다'는 생각이 내 삶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3. 예수님의 평안을 '지켜 나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태도를 의미하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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