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장 18절 John의 칼럼 - 기도, 숨처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기도는 종교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인간은 자신보다 크고 깊은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존재다. 에베소서의 저자 바울은 감옥 안에서 이 편지를 썼다. 사슬에 묶인 몸으로, 그는 "항상 기도하라"고 권면했다. 상황이 아니라 방향이 문제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헬라어 원문에서 "항상(판토테, πάντοτε / 판토테)"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쉬지 않고'가 아니라 '어떤 때에도 멈추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명령이 아니다. 삶의 모든 순간을 기도의 자리로 삼으라는 초대다. 아침 커피 한 잔 앞에서도,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답 없는 회의실 안에서도 — 그 마음의 방향이 기도가 될 수 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은 더욱 인상적이다. 헬라어 "엔 프뉴마티(ἐν πνεύματι / 엔 프뉴마티)"는 '성령 안에, 성령의 숨결 속에서'를 뜻한다. 기도란 내가 만들어내는 독백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서 탄식하고 계신 성령의 언어에 우리가 올라타는 것이다. 잘 표현되지 않는 기도, 어눌한 기도도 성령이 통역하신다.

바울은 또한 "깨어 구하기를 힘쓰라"고 말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감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무뎌진다. 이웃의 고통에, 세상의 불의에, 나 자신의 영혼의 소리에. 기도는 그 무감각을 깨뜨리는 망치다.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을 더 선명하게 본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여러 성도를 위해 구하라"고 덧붙인다. 기도가 나를 위한 소원 목록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다. 진정한 기도는 타인을 향해 열린다. 내 이름뿐 아니라 옆자리 사람의 이름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 그것이 기도의 완성이다.

기도는 하늘을 향한 독백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누는 가장 낮고도 가장 깊은 대화다. 말이 막혀도 된다. 눈물이 먼저 흘러도 된다. 성령이 우리의 기도를 완성하신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하루 중 어떤 순간에 가장 자연스럽게 기도의 마음이 일어나는가? 그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늘릴 수 있을까?

2.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이 내 기도 방식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3. 오늘 내 기도 목록에 나 자신 외에 누구의 이름이 있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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