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5장 4절 John의 칼럼 - 말의 생명력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말은 공기처럼 우리 삶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며 살고 있을까. 잠언의 지혜자는 혀를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로 묘사한다. 하나는 생명 나무요, 다른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부수는 칼날이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온순한 혀"는 מַרְפֵּא לָשׁוֹן (마르페 라숀)으로, '치유하는 혀', '회복시키는 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단순히 부드러운 말투를 넘어, 상처 입은 영혼을 고치고 회복시키는 능동적인 힘을 가리킨다. 반면 עִקְּשׁוּת בָּהּ (이케쉬우트 바흐), 즉 '패역함'은 뒤틀리고 왜곡된 말, 진실을 비트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런 말은 듣는 이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John Wesley는 그의 설교와 일지에서 거듭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聖化)는 예배당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 습관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살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혀가 생명 나무가 될 수도, 독이 되어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이유다.

현대 사회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SNS, 댓글, 메시지, 회의실의 발언들. 빠르게 쏟아지는 말들 속에서 우리는 종종 말의 무게를 잊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당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몇 년이고 상처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지금 이 순간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 생명줄이 될 수 있다.

잠언의 지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말은 오늘 누군가에게 생명 나무였는가, 아니면 날카로운 가시였는가. 성도로서의 삶은 거창한 종교적 행위 이전에, 오늘 내가 나누는 말 한마디를 점검하는 데서 시작된다. 말은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치유하는 말은 치유받은 마음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생명을 살리는 말을 건네보자. 격려 한마디, 진심 어린 경청, 따뜻한 위로. 그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심을 수 있는 가장 작지만 강한 생명 나무다. 혀는 작지만 그 열매는 영원을 향해 자란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말 중에서 '생명 나무'가 된 말과 '상처'가 된 말은 각각 무엇이었는가?

2. 디지털 시대의 댓글과 메시지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온순한 혀'의 원칙을 실천할 수 있을까?

3. 말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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