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5장 16절 John의 칼럼 - 네 빛을 비추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저마다 불을 품고 태어난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 남는 경우가 있다. 무심코 건넨 위로, 조용히 내밀었던 도움의 손길, 말보다 먼저 움직였던 몸짓. 이런 것들이 세상을 조금씩 따뜻하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살면서 종종 목격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 한 문장은 선언이자 초청이다. 빛이 되라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빛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헬라어 원문에서 '빛'은 φῶς(포스, phōs)로, 단순한 조명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생명의 원천이자 진리가 드러나는 자리, 곧 하나님의 영광이 가시화되는 도구다. 그 빛을 이미 받은 자는 감추기보다 드러내야 한다.
존 웨슬리는 이 본문을 해설하면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종교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광야에 두거나 세상에서 숨겨두는 것은 하나님의 설계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혼자만 조용히 믿고 살면 된다는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빛은 감춰지면 빛이 아니다. 타오르지 않는 불꽃은 불이 아닌 것과 같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하라는 윤리적 권면이 아니다. 여기서 '착한 행실'은 헬라어로 τὰ καλὰ ἔργα(타 칼라 에르가, ta kala erga)인데, '아름다운 행위들'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형식이 아니라 동기다. 칭찬받으려는 마음도,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도 아닌, 그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행위가 진정한 빛이다. 그 빛은 스스로를 낮추면서 동시에 하늘을 높이는 역설적인 힘을 지닌다.
빛은 강요하지 않는다. 빛은 그저 자신이 있는 자리를 밝힐 뿐이다. 이웃의 어려움을 모른 척 지나치지 않는 사람,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 용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화해의 손을 내미는 사람, 가장 작은 이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 — 이들이 세상의 빛이다. 거창한 무대가 필요하지 않다. 일상이 무대고, 오늘이 그 빛을 비출 시간이다.
이 빛의 목적지는 분명하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선한 행위가 우리를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게 해야 한다. 웨슬리는 이를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하나님께서 먼저 선행적 은총으로 우리를 밝히셨기에, 우리는 그 빛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통로가 된다. 빛을 받은 자는 빛을 흘러가게 한다.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있는가? 혹시 빛을 감추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2. 내 선한 행위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아니면 나 자신의 인정을 위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본 적이 있는가?
3. 웨슬리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왜 혼자만의 경건으로 완결될 수 없는가?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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