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 John의 칼럼 - 거룩함으로 부르심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라"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 앞에 서 있다.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어떤 말을 할지 - 삶은 끊임없는 결정의 연속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근본적인 물음, 즉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멈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선명하게 선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오직 하나, 거룩함이라고.
헬라어 원문(NA28)에서 이 구절의 핵심은 두 단어의 대조에 있다. "부정함"은 헬라어 아카타르시아 (ἀκαθαρσία, 아카타르시아)로, 도덕적·영적 더러움을 뜻한다. 반면 "거룩함"은 하기아스모스 (ἁγιασμός, 하기아스모스)로, 단순히 깨끗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구별되어 헌신된 삶의 과정 전체를 가리킨다. 즉 거룩함은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삶을 다듬어가는 지속적인 여정이다.
웨슬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 주석에서 거룩함(sanctification)을 마음과 삶 전체의 완전한 성결(entire holiness of heart and life)로 해석하며, 그것은 단 하나의 덕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삶의 총체적 방향임을 강조한다. 그 거룩함은 인간의 의지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8절 주석에서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가 바로 진리를 깨닫게 하고 거룩함을 살아내도록 능력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거룩함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높은 이상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끊임없이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부른다. 더 많이 소유하라, 더 강하게 보이라, 더 편한 길을 택하라고 속삭인다. 그 목소리들은 크고 설득력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모든 소음 사이에서 조용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거룩함으로 불렀다." 이 부르심은 죄책감의 채찍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존재로 지음받았는지를 상기시키는 은혜의 초대다.
성도의 삶에서 거룩함은 거창한 종교적 행위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직장에서 작은 유혹 앞에 정직을 선택하는 것, 가정에서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 SNS에서 무분별한 말을 삼가는 것 - 이런 일상의 작은 결단들이 모여 거룩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삶의 특정 영역이 아니라 삶 전체를 향한다.
우리는 오늘 이 구절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은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기 위함이 아니다.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더 깊이 하나님께 구별된 존재로 빚어져 가는 것 -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부르심이다.
칼럼에 대한 질문:
1. 당신이 매일 직면하는 삶의 선택 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인 '거룩함'과 가장 멀어지기 쉬운 영역은 어디입니까?
2. 거룩함을 '과정'으로 이해할 때, 오늘 하루 당신의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는 무엇입니까?
3.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부담입니까, 아니면 위로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p.s: 진주충만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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